이안리치를 소개합니다
이안리치는 '이 안'(자신, 자아, 마음)과 부자인 '리치'를 합친 말입니다. 진정한 내면 부자가 되고 싶어서 지은 이름입니다. 한때는 극심한 트라우마로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고 했지만 지금은 나를 치유하는 가장 좋은 치료제는 '나'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견디며 살 수 있었고 다른 사람에게 힘이 되어주고 싶어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아래 글은 이안리치의 '성', '폭력', '가족' 트라우마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처음에는 이런 이야기를 꺼내는 게 힘들었지만
스스로 치부를 드러냄으로써 나를 묶고 있던 속박이 풀린 걸 깨달았습니다.
비로소 영혼에 난 상처 치료를 스스로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수치심을 극복하여 내가 어떤 사람이며, 어떤 가치를 추구하는 사람인지 알게 될 때
진정한 자유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 zacdurant, 출처 Unsplash
이안리치의 유년 시절은 암흑이었습니다.
어릴 때부터 친척과 나와 쌍둥이인 친오빠, 학교 친구들, 담임 선생님한테 성추행과 성폭력을 당하고 학교폭력까지도 당했었습니다. 그래서 얼굴에 멍이 들거나 너무 맞아 퉁퉁 부어 집에 가기도 했었습니다.
그럴 때 가족들은 거의 방치를 했고 얘기라도 하면 "네가 행실을 어떻게 해 다녔길래 그러냐?" "나 같아도 너 싫겠다." "쟤 또 시작이네" "넌 애가 왜 그러냐?" "가족인데" "가족이니까" "넌 애가 왜 그러냐?" "너만 입다물면 돼"였습니다.
"언니는 매력적으로 생겼고 오빠는 잘생겼는데, 넌 이 얼굴로 살아가면 안 돼. 넌 무조건 성형해야 돼." 하며 다른 형제들과 외모 비교를 하며 비하하기도 했습니다. 물론 다른 형제들은 글재주가 있어 상을 타오기도 했는데 제가 쓴 글은 상은 아니었지만 소책자에 실리기도 했는데 돌아온 대답은 "니가?"하며 재능 비교 및 비하하기도 했었습니다.
부모님이 종교에 빠져서 그쪽 관련된 분이 쌍둥이 오빠에게 영혼이 맑다고 한 이후부터는 어릴 때 쌍둥이와 투닥거리기만 하면 '맑은 영혼을 가진 오빠를 못 잡아먹어서 안달인 애' '못돼먹은 애'였습니다. 그리고 가문을 이끌어 갈 사람은 제가 아닌 오빠라고 혼나는 건 제 몫이었습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흘러 고등학생이 되었고 공부에도 흥미가 없었던 저에게 취미인 '사물놀이'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강제적으로 전공으로 시키려 하길래 '취미로 하면 즐길 수 있지만 전공으로 하면 즐길 수 없을 것 같아 하기 싫다. 나의 즐거움을 빼앗아 가지 말아 달라.'라고 몇 번을 말하고 설득을 하려 했지만 제 감정과 생각은 중요치 않았습니다. 그렇게 강제적으로 전공을 하게 되면서 특기생으로 빠져 교복 입고 홀로 타지를 왔다 갔다 하며 새벽시간을 돌아다닐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성폭행을 당했고 임신까지 하게 되었습니다. 교복이 더럽혀지고 며칠 동안 온몸이 아파 어정쩡하게 걷고 배가 점점 불러왔지만 어느 누구도 저에게 관심이 없었습니다. 단지 '사육된 뚱뚱한 돼지'였을 뿐입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어느 날, 몸을 가누기 힘들 정도로 안 좋아졌습니다. 그때 당시 고3이었고 임신이라는 것을 부정하고 싶었고 아파도 시간이 지나면 다 낫는다는 이유로 병원에 데리고 가는 걸 아까워하셨기에 스스로 '고3병'이라며 다독였습니다. 그러다가 구토, 고열, 추위, 몸 떨림을 오가며 너무 괴로워 "나 좀 살려줘"라고 해도 했지만 "쟤 식중독인 거 갖고 되게 저러네"하며 방치했습니다. 그래도 나 몸이 너무 안 좋으니 병원 데려가 달라고 해서 동내 병원에 갔는데 대학병원에 가보라고 했고 응급수술을 해서 무의식 며칠 뒤에 깨어날 수 있었습니다.
원인은 극심한 스트레스로 사산된 아이로 인한 '패혈증'이었습니다. 치사율이 높은 병이었지만 병원에서도 기적적으로 살아났다고 했습니다. 그렇게 한동안 대학병원 중환자실에서 일반실로 점차 회복을 하고 퇴원을 하는데 엄마가 "약 값만 ○백만 원 나왔네."란 말을 몇 번씩 말씀하셔서 빚쟁이가 된 느낌을 떨쳐낼 수 없습니다. 아무리 부모님의 강요로 억지로 한 전공이었지만 몸이 아파 무산이 되어버리자 삶은 막막했고 결국 넌 아무 대학이나 들어가서 돈이나 벌어오라고 하셨습니다.
그래도 다행히 대학 공부에 재미 들여 성적 1등으로 전액 장학금과 교내 여러 활동을 하며 받은 장학금으로 부모님께 경제적 부담을 덜어드리려 했고 자격증도 따며 바쁘게 살았습니다. 그렇게 열심히 하는 모습을 보고 좋게 봐주신 분으로 인해 졸업 전 취업을 일찍 할 수 있었고 일도 하며 학점은 리포트로 대체해서 졸업장까지도 딸 수 있었습니다. 열심히 살아온 나에게 내가 공부하고 싶다고 하면 가족들이 지지해 줄 줄 알았지만 돌아오는 답은 "○꼬셔서 결혼이나 해라." "공부는 무슨 공부" "돈이나 벌어와" "공부? 니가? 할 수 있으면 해봐라."였습니다. 그렇게 학습된 무기력으로 또 좌절을 하며 스스로 '난 감정 없는 기계다. 돈이나 벌어라.'하며 자기 세뇌를 했었습니다.
그런데 집안 사정은 점점 안 좋아지기 시작했고 투잡, 쓰리잡을 하면서도 공부는 하고 싶어서 자격증 공부도 하며 적게 자면 30분, 길게 자면 2시간을 자며 악착같이 버텼습니다. 그렇게 나름 열심히 살며 가족들을 위해 나 하나 희생하면 된다고 생각하며 버티고 버텼습니다. 하지만 혼자서 버티기엔 너무 힘들어서 다른 형제들에게 대학 다닐 거면 성적 장학금을 받으면 취업도 잘 되고 부모님 짐 덜어드릴 수 있지 않겠느냐, 또는 아르바이트했으면 좋겠다. 아니면 내가 돈은 어떻게도 벌 테니 자격증 공부해 보지 않겠냐며 말했습니다. 그리고 녹초가 되어 집에 들어오면 TV 리모컨을 손에 들고 소파에 누워서 "내가 이러고 싶어서 이러냐?" "돈이 없어서 아무것도 할 수가 없네." "오늘은 주식으로 ○백만 원 날렸네" 또는 컴퓨터 게임에 빠져 계시길래 주식을 할 거면 일반 신문 보지 말고 경제신문으로 바꾸고 하실 거면 내가 책 사다 드릴 테니 공부하시라고 하면 "난 이것만 봐도 다~ 안다" "책 살 돈 아껴라" "쟤 지혼자 돈 번다고 유세 떠네" "젊을 때아니면 언제 놀아보냐?" 하며 오히려 악착같이 일하는 저를 혼내셨습니다.
어떻게든 살아보고자 발버둥 치는 저에게 너무나 가혹하기만 했습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자 감정의 골은 점점 더 깊어졌고 결국은 독립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래도 가족이란 이유로 가족들의 보험료, 폰 요금 등 경제적인 걸 부담하며 지내다가 결정적으로 가족과 완전히 연을 끊게 된 계기가 생겼습니다.
고3 아파서 생사를 오갈 때 형제들 중 저한테만 사망보험금을 가입해놓고 수령금액은 ○억 수령인은 엄마 이름으로 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물론 그때 당시 제가 미성년자였기에 가입자 및 수령인을 보호자 이름으로 해놓는 것 까진 이해한다고 해도 무의식으로 사경을 헤매고 있을 때 사망보험금을 들 정신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물론 형제들 중 나만 가입되어 있는 게 문제이기도 했습니다. 이 보험에 대해 물었을 때 좋은 보험이라고 그냥 넘기기도 했고 끝까지 이 돈을 내가 계속 납입을 하게 했었다는 것입니다. 차라리 모르게 정리를 하던가 정 사망보험금을 받고 싶으면 본인이 어떻게 해서든 납입을 하던가 그것도 모르고 거의 7~8년 동안 내가 죽으면 나오는 사망보험금을 내가 납입을 하고 있었다는 것이 너무 큰 충격이었습니다. 결국은 폭발했고 저에게 희생을 강요하며 형제들과 부모님을 부양하게 했던 일들, 학창 시절 학교폭력으로 힘들어했을 때, 형제들과 비교하며 저를 비하했을 때 등을 들먹이자 돌아온 대답은
"난 그런 적 없는데" "넌 꼭 이상한 얘기만 하더라" "몰랐는데" "네 그릇이 작아서 그래" "가족이니까" "가족인데 그것도 못해주냐" "가족이면 그런 거 감싸면서 사는 거야"
마음 한구석에는 내가 학교 폭력 당하는 걸 몰랐을 거라고 작은 희망을 걸고 있었지만 알면서 방치한 건 세상이 무너지는 느낌 있습니다.
부모님은 타인을 위해서 저녁부터 아침이 밝을 때까지 몇 시간이고 며칠이고 그들의 말을 들어주고 조언을 해주시는데 왜 자식인 나에게는 저리도 무심하셨는지, 그래서 내가 비뚤어지기라도 하면 주변에서도 어쩜 저런 부모 밑에 저런 자식이 나왔는지 욕도 얻어먹고 저런 부모님이 있어서 좋겠다는 소리도 듣기도 했었습니다.
'내가 정말 이상한 사람인 걸까? 무슨 일이 있으면 모든 게 내 탓이고 나무라는 걸 보면 정말 내가 이상한 사람인 것 같기도 하고.. 내 생각이 잘못된 건가? 내가 태어나서 오히려 가족들을 힘들게 한 건 아닐까? 역시나 감정 컨트롤 못한 내 잘못인 걸까? 난 역시 감정을 드러냈으면 안 되는 거였을까? 나만 끝까지 참았다면 화목했을까? 아니 차라리 나만 없어지면 되는 건가? 나는 왜 태어났을까? 죽어버릴까? 죽어버리기엔 내가 너무 억울해.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지? 차라리 원혼이 되어서 가족들을 괴롭힐까? 난 왜 살고 있는 걸까? 역시 난 돈이었던 걸까? 난 왜 열심히 살았던 걸까? 난 이미 몸이 더럽혀졌어. 아무도 날 사랑하지 않을 거야. 가족도 날 사랑하지 않는데 이런 날 누가 사랑하겠어?'
이런 수많은 생각들로 스스로 괴롭히기 시작했습니다. 허한 마음을 물건으로 가득 채우기도 했고 다른 사람에게 사랑을 갈구하며 방탕한 생활을 했습니다. 영화나 드라마 기사 등을 통해서 화목한 가족 내용이 나오면 '내 가족은 저러지 않아!'하며 분노를 했습니다. 친족 살인을 보면 대리 만족을 하면서도 반면 단 한 사람이라도 그 사람의 마음을 들여다봤다면 저런 비극은 안 일어났을 거라며 슬퍼하기도 했습니다. 성에 관한 내용이 나오면 몸이 굳어버리거나 분노를 하거나 난 왜 저런 상황을 겪어야 했는지 스스로 수치심과 자책감으로 괴로워하기도 했었습니다.
하지만 깊은 내면에는 사랑받고 살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습니다. 그래서 정신과 다니며 약도 먹어보고 주변에 조언을 구할 길이 없어 책을 통해 삶의 지혜를 얻고자 했었습니다. 책이 저를 좌절하게 만들기도 했었습니다. 하지만 수년간 다독을 하며 받아들일 건 받아들이고 스스로의 방법을 터득해서 지금까지 다다를 수 있었습니다. 좋은 의미로 말했지만 그 사람을 죽이는 말도 있습니다. 그건 주변의 지인을 통해서도 그렇고 책을 통해서도 그렇습니다. 그러다가 깨달은 것이 마음 치유의 명약은 바로 자신에게 있다는 것입니다. 자신을 세상에서 잘 알고 있는 건 바로 자신이기 때문입니다. 세상에 있는 여러 말들을 자신에게 맞게 변환시켜 말할 수 있는 건 자신입니다. 내가 힘든 그때, 그 시간에 위로해 줄 수 있는 건 오직 자신뿐입니다.
스스로 치유 할 수 있는 힘을 같이 키워 진정한 마음 부자가 되도록 해봅시다.
공유하기 글 요소 저작자표시
from http://ianrich-healing.tistory.com/2 by ccl(A) rewrite - 2021-10-31 01:59:40
댓글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