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생각나게 하는 백현 '밤비' 뮤직비디오
뮤직비디오가 너무 내 취향을 다 때려다 박았다. 밤, 비, 조도 낮은 간접 조명, 낡은 야간기차. 다 이시국 직전에 다녀온 마지막 여행에서 푹 빠져버린 것들이다.
여행지의 밤은 길었고 거의 매일 눈이나 비가 내렸지만, 조용히 내려앉는 노란빛의 조명들은 자칫 무섭고 우울해질 수 있는 풍경을 아늑하고 예쁘게 만들어주었다. 그래서 보통은 우울의 상징인 어둠과 비가 좋아지게 됐다. 근데 그게 다 이 컷에 있죠. 심지어 클라이막스야. 티저에서 이미 반해버림.
전체적으로 굉장히 어두운데도 답답하지 않게 잘 만든 것 같다. 중간에 빛이 터지면서 갑자기 밝아지는 씬도 이질적이지 않았다.
기차 내부의 빛은 일부러 밖을 비추지 않게 그린 걸까. 그래서 더 비현실적이고 묘한 것 같다. 집중도 잘 되고. 이런 어둡고 간결한 이미지들이 그냥 너무 좋다... 마지막에 기차 위에 올라간 컷도 좋았다.
뮤비를 그냥 볼 땐 몰랐는데 영어 자막을 켜두고 보니 night train이 연음이 되면 night rain으로도 들릴 수 있을 것 같다. 밤비. 그래서 뮤비 테마를 밤기차로 했나. 아직 소개글이나 홍보콘텐츠들을 안 봐서 모르겠다. 그냥 요새 SM이 뭔가 기차로 연결된 세계관을 만들고 있는 것 같기도 하고. 블랙맘바나 돈콜미 뮤비도 살짝 생각났다.
Night Train은 개인적으로는 생각만 해도 기분 좋아지게 하는 단어다. 야간기차가 여행의 첫 여정이자 가장 오래전부터 고민하고 준비했던 일정이었다. 그래서 가장 많이 본 단어이기도 하지. 비행기를 제외하고는 돈을 가장 많이 쓴 일정이기도 했고, 그만큼 가장 만족스러웠던 시간이기도 했다.
돌아오는 비행기에서까지 그 여운이 남아서 영화도 <폴라 익스프레스>를 봤다. 그 영화까지가 기차여행의 연장선으로 느껴졌다. 그땐 비즈니스를 탔는데, 약간 쌀쌀하고 캄캄한 기내에서 담요 덮고 누워서 블루베리 주스와 감자칩을 먹으면서 보니 몰입도 최고였다. 창밖엔 캄캄하고 깨끗한 밤하늘과 구름이 있었고. 근데 그게 진짜 내 인생 마지막 여행인 건 아니겠지...
내가 실제로 탄 야간기차는 완전히 현대식이라 뮤비에 나온 기차와는 느낌이 전혀 다르지만, 그 애니메이션의 배경이 되는 기차가 뮤비 속 기차와 좀 닮은 것 같다. 그 기차도 석탄을 연료로 하는 옛날 기차였고, 밤에 출발해서 거의 러닝타임 내내 달리기만 했던 것 같다. 아이들이 주인공인데도 어둡고 휑하고 약간은 위험한 느낌도 드는 영화였다. 뮤비를 보면서 그 영화와 여행 생각이 많이 났고, 그래서 뮤비에 더 빠져들었던 것 같다. 물론 그게 아니어도 그냥 예쁘고 잘 만든 뮤비다.
나는 1인실 침대칸을 탔고, 타자마자 골아떨어져서 기차의 밤은 못 즐겼지만(어차피 밖에 보이는 것도 별로 없었고), 덕분에 숙면을 취하고 일찍 일어나서 환상적인 일출을 볼 수 있었다. 동해의 일출은 많이 봤는데 보라빛 새벽은 처음이었다. 해도 천천히 떠서 거의 1시간 정도 그 색을 감상할 수 있었다. 너무 예뻐서 아침 먹다 말고 입 벌리고 창밖만 봤다. 그런데 뮤직비디오에도 날이 밝은 씬까지 나와서 좋았다. 커튼 사이로 살짝 보이는 풍경과 어두운 실내 조명, 안락한 가구들이 그 순간을 떠올리게 했다.
근데 다시 보니 아침보다는 낮이나 해질녘인 것 같네. 뮤비가 계속 어둡다가 밝아져서 아침인 줄 알았는데 다시 보니 어두워지기 몇 시간 전인 것 같기도 하다. 백현 옷이 안 젖은 거 보면 기차 밖으로 나가기 전이겠네.
기차씬의 야외 배경은 스위스인 것 같다. 스위스에 저런 다리 있지 않나? 이탈리아였나. 둘 다 안 가봐서 모르겠다
계절은 왠지 봄일 것 같았는데 아래 사진을 보면 눈이 쌓여 있는 것 같기도 하고. 근데 그냥 위의 그림처럼 번개 빛을 표현한 거겠지? 키 큰 침엽수들도 왠지 맘에 들어.
다 좋았는데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이정도이다. 아무래도 나랑 관련이 된 게 기억에 남는 법이니까. 춤이나 의상도 너무 좋았는데, 그건 어떻게 표현할 능력이 없다.
영상도 좋았지만, 처음 볼 땐 음악에 더 집중을 했었던 것 같다. 노래가 너무 어려운 것 같아서 괜히 긴장하면서 듣게 됐다. 그런데 부르는 사람은 너무 편안하고 부드럽게 불러서 신기했다. 발음을 흘리듯 부르는 것 같은데 가사 전달도 90% 정도는 됐던 것 같다. 노래를 무슨 곡예사처럼 잘하는 것 같다. 춤이나 영상보다도 노래가 더 흥미진진했어. 이번에도 혼자만 부를 노래를 만들어버렸네.
이런 좋은 작품을 보고 들을 때마다 어떤 면이 좋은지 더 자세히 말할 수 있는 음악적 소양이 없다는 게 답답하다. 하지만 아무런 분석 없이 그저 감탄하고 느끼고 즐길 수 있는 분야가 있다는 것도 멋진 일인 것 같아서, 앞으로도 배우지는 않을 생각이다. 그냥 4분 내내 이 작업에 참여한 모든 분들께 감탄하고 감사할 뿐이다.
'밤비'는 Super M의 '호랑이(Tiger Inside)' 다음으로 내가 좋아하는 뮤비가 됐다. '호랑이'는 내 최애동물인 호랑이의 야성이 테마인데다가, 음악은 국악크로스오버고, 춤과 의상까지 그 컨셉에 충실하게 맞춰놔서 이걸 넘을 수 있는 뮤직비디오는 나오기 힘들 것 같다. 원래 뮤비는 한 번 보고 나면 잘 안 보는데 이건 진짜 여러 번 돌려봤다. 호랑이와 크로스오버에 좀 환장하는 편.
오늘 쥬얼 앨범도 왔는데 총 6곡이네. 입대 전 마지막 앨범인데 생각보다 적어서 좀 아쉽다. 두 번 정도 들어보긴 했는데 기억에 남는 게 아직은 없다. 밤비 뮤직비디오의 충격이 아직 가시지 않아서 그런 것 같다. 뮤비 좀만 더 보고 노래 들어야지.
근데 이런 명곡을 내놓고 군대를 가다니... 잘 다녀와요...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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