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 삶을 만나다, 제2부 친숙한 것들을 낯설게 만들기 - 3장 살아 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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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와 세계화①
우리의 현실은 단순한 산업 자본주의 의 모습이 아닙니다. 우리는 산업자본이 국가 를 탈출해서 세계로 탈주하는 시대에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현실이지요. 몇몇 사람들은 이런 현실을 그저 현실로서 묵묵히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젊은 엄마들도 이제는 아이가 우리나라 말을 배우기도 전에 세계어인 영어를 아이의 머릿속에 각인시켜주려고 노력합니다. 바로 조기 영어 교육, 조기 영어 캠프, 영어 마을 등이 극성을 부리는 것이지요. 심한 경우 어떤 지식인은 당당하게 아예 영어를 모국어로 사용하자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또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몇몇 대학에서도 이제는 수업의 반 이상을 영어로 진행할 계획이라고 자랑하기도 합니다. 세계화에 발맞추어 인재를 양성하자는 것이겠지요. 그러나 결국 이 모든 현상은 미국 산업자본이 우리나라 출신의 미래 노동 자를 재교육하는 비용을 줄이는 것에 불과한 일이 아닐까요?
세계는 하나라는 세계화의 화려한 구호를 의심하면서 우리는 일본이 말했던 대동아공영권이란 이념을 함께 떠올려볼 수 있습니다. 동아시아가 모두 ' 함께 번영하자 [共榮]'는 약속은 얼마나 솔깃한 것입니까? 그러나 결국 이런 이념을 외친 일본은 어떤 일을 벌였나요? 우리나라를 포함한 동아시아는 모두 일본의 식민지, 일본 산업자본의 시장으로 전락하지 않았던가요? 일본은 그 당시 한국어를 금지하고 일본어를 모국어로 쓰도록 강제 했습니다. 물론 명분은 일본과 우리나라는 하나니까 원활한 의사소통을 하기 위해서 언어를 통일하자는 것이었죠. 그러나 사실 이런 언어정책은 식민지 지배를 저비용으로 효율적으로 수행하기 위한 것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피지배자가 자신의 명령을 알아듣도록 하기 위해서 지배자는 먼저 피지배자를 교육시킬 필요가 있었던 것이지요.
일제강점기에 이런 일본의 식민지정책에 그대로 동참했던 몇몇 우리의 못난 조상들을 우리는 결코 잊어서는 안 됩니다. 자신들 소수만의 기득권을 보호하기 위해서, 그들은 동시대의 동포들뿐만 아니라 후손들까지도 모조리 일본에 팔아넘겼기 때문입니다. 삶의 터전을 지키기는커녕 스스로의 문화나 역사, 심지어 언어마저도 해체 하려고 했던 일부 지식인들을 우리는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그로부터 수십 년이 흐른 지금, 일제강점기의 그들과 너무도 유사하게 몇몇 사람들은 세계화, 미국화가 불가피한 현실이라고 짐짓 정색을 하며 이야기합니다. 마치 자신들도 슬프기는 하지만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말이지요. 여기서 우리는 윌리엄 탭이 제출한 이런 제3세계 지식인들의 기원에 대한 슬픈 보고서를 읽어볼 수 있습니다.
냉전이 끝나자, 미국은 제3세계에서의 정치적 지배 전략을 바꿀 수 있었다. 냉전 기간 동안 미국은 제3세계의 독재자를 지지했다. 미국의 지지를 받은 독재 정권들은 '혁명적인' 토지개혁, 노조의 조직화, 그리고 자유롭고 공평한 선거를 가로막으며 국가의 획일적인 질서를 유지할 수 있었고, 한편 미국 투자자들의 접근을 보장해주었다. (……) 1980년대와 1990년대경에도 가혹한 장군들과 그 측근의 가족 엘리트들에 의해 장악된 이들 권위주의 정부는 외국 및 국내기업들로부터 지대를 착취했고, 비생산적인 억압 기구들을 계속 유지했다. (……) 이 지배계급의 자손들 역시 결국에는 이들 나라의 정치 경제를 변화시키는 데 주요한 세력으로 떠올랐다. 주변국의 엘리트들은 언제나 그들의 자손을 미국이나 영국의 대학으로 유학을 보냈던 것이다. 레이건 대처시대에 그들은 미국과 영국에서 자유 시장 경제학을 공부하였고, 그들 나라로 다시 되돌아가 자국 경제를 세계화의 조류에 맞게 스스로 변화시켜나갔다. 그들은 경영자 계급이 직접적인 군사 지배를 대체하는 과정에서, 규제 완화와 민영화라는 정책을 채택하게 된다. 즉 그들은 귀국하여 자국 경제를 신자유주의에 따라 구조 조정했던 것이다. 또한 그들은 특정한 계급으로서, 국가주의 형태에서 시장 지배적 체제로 변화하는 과정에서 막대한 이득을 얻었다. 국가가 소유한 자산을 민영화하면서 그로부터 큰 이득을 얻은 것이 바로 그들이었던 것이다. 『부도덕한 코끼리』
물론 이런 냉소적인 지적은 주로 남미나 중동의 친미 독재 정권들을 염두에 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런 인식은 우리나라의 사정에도 상당 부분 적용될 수 있는 것입니다. 불행히도 우리나라의 친미 독재 세력의 피에는 친일파의 피도 함께 흐르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제 잠시 친일파로부터 친미파로 이어지는 반역의 역사에 대해 회고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친일파의 기원은 조선 말 집권층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권력 이 있어야 권력을 팔아먹든 말든 할 수 있을 테니까요. 친일파들은 친일의 대가로 식민지 조선에서 엄청난 기득권을 보장받게 됩니다. 그리고 결국 그 기득권을 토대로 그들은 자신들의 자식을 일본에 유학 보낼 수 있었고, 장래의 지식인으로 키워 낼 수 있었습니다.
그들은 해방된 조국에서 자신들의 기득권을 영구히 유지하기 위해서 이승만 정권과 연대하고, 반민특위를 해체 시켜버립니다. 그리고 그들은 마침내 박정희 정권과도 결탁하게 됩니다. 그들은 탁월한 현실주의자들이었기 때문입니다. 물론 그들의 현실주의는, 우리 사회의 모든 사람을 위한 현실주의는 결코 아니었습니다. 오로지 자신들만의 기득권을 위한 현실주의였지요. 이렇게 얻어진 기득권을 통해서 이제 그들은 자신들의 자식을 미국으로 유학 보내게 됩니다. 그들은 미국의 산업 자본주의 가 앞으로 대세가 될 것임을 내다볼 수 있는 정도의 안목은 충분히 가진 사람들이기 때문이지요. 마침내 그들의 자식들이 하나둘 우리 사회로 되돌아옵니다. 신자유주의 이념과 세계화의 전도사가 되어서 말이지요. 그리고 그들은 지금 학계에서, 언론계에서, 관계에서 왕성하게 활약하고 있습니다. 이제 세계화는 최소한 우리나라에서는 막을 수 없는 추세가 된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이 바로 우리 사회의 헤게모니 를 쥐고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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