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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원 서소 씨의 일일

회사원 서소 씨의 일일

서소 지음 / 시소

평범하게 살고 있다는 것이 필생의 자랑이었던 그였으나, 어떤 일에 휘말리게 되었고 그 바람에

서소 씨는 몇 달 동안 회사에 가지 못하게 된다. 느긋함과는 거리가 있는 삶을 살아왔던 서소 씨

는 목적지를 정하지 않고 시작한 산책, 마침내 발견한 아지트 카페 'B'에서의 이야기와 안 하던 짓

을 하던 중 벌어진 우스운 사건, 신입사원 시절 회사에서 겪었던 식은땀이 흐르는 사건, 두 남자를

좋아하는 여자와 연애를 했던 일, 비뇨기 질환과 성욕의 감퇴를 느끼고 당황했던 사건, 삼십 대 초

반에서 이제 사십 대를 바라보면서 들게 된 생각, 불안장애 치료기, 가족들과 있었던 일, 가족에

대한 생각, 가족으로부터 받았던 상처를 극복한 일, 한 번도 만나보지 못한 여자와 2년간 연애를

했던 사건 등…… 그러니까, 재미를 위해 이 책을 썼다.

회사원 서소 씨의 일일

서소 지음

▣ 저자 서소

38세, 회사원 그리고 이야기꾼

▣ Short Summary

평범하게 살고 있다는 것이 필생의 자랑이었던 그였으나, 어떤 일에 휘말리게 되었고 그 바람에 서소

씨는 몇 달 동안 회사에 가지 못하게 된다. 느긋함과는 거리가 있는 삶을 살아왔던 서소 씨는 목적지

를 정하지 않고 시작한 산책, 마침내 발견한 아지트 카페 'B'에서의 이야기와 안 하던 짓을 하던 중 벌

어진 우스운 사건, 신입사원 시절 회사에서 겪었던 식은땀이 흐르는 사건, 두 남자를 좋아하는 여자와

연애를 했던 일, 비뇨기 질환과 성욕의 감퇴를 느끼고 당황했던 사건, 삼십 대 초반에서 이제 사십 대

를 바라보면서 들게 된 생각, 불안장애 치료기, 가족들과 있었던 일, 가족에 대한 생각, 가족으로부터

받았던 상처를 극복한 일, 한 번도 만나보지 못한 여자와 2년간 연애를 했던 사건 등…… 그러니까,

재미를 위해 이 책을 썼다.

무려 12년 동안이나 잘 다니던 회사로부터 갑작스럽게 5개월간의 휴가(?)를 받은 서소 씨는 그동안 정

말 하고 싶었던 일을 해 보기로 결심한다. 가급적 평범한 선택을 해왔다고 믿은 그였으나 어디서부터

어긋난 것인지, 어디서 시작된 나비의 날갯짓이 태풍이 되어버린 것인지 이제 더 이상은 평범하지 않

은 인생을 살게 되어 버렸다. 나이가 들수록 고를 수 있는 선택지는 적어지지만 서소 씨는 날이 갈수

록 과감해지는 중이다. 아무리 평범한 선택을 해도 평범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알았고, 한 번쯤은

하고 싶은 대로 해 봐도 되는 걸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어쩌면 우리가 겪는 하루하루의

일상일 수 있는 이 책이 누군가에게 자그마한 위안과 용기를 줄 수 있었으면 좋겠다.

▣ 차례

완벽한 하루 / 망원예찬 / 카페 'B' / 대박이 / 펫로스 / 단지 아빠 / 술이 술을 술술술 / 퍼즈(Pause) /

너의 이름은 / 폐업카페 'B' / 클럽 '거래처' / 제임스 딘 / 부산행 / 선덕여왕 / 페어 웰 파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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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원의 서소 씨의 일일

회사원 서소 씨의 일일

서소 지음

완벽한 하루

회사에 다니던 어떤 남자가 아니, 회사를 다니는 것 말고는 별로 할 줄 아는 게 없던 서른 후반 즈음

의 어떤 남자가 벌써 몇 달째 회사에 가지 않고 있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그런 사람들 종종

볼 수 있는 거 아니야? 그리 특별한 일도 아닌 것 같은데'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으나 그 나이에 그 정

도로 긴 쉼을 갖고 있는 남자 회사원의 일상에 돋보기를 대어 확대해보면 의외로, 몹시 치열한 순간을

살아내고 있는 중일 수도 있다.

이를테면 새로운 직업을 찾아 인생을 걸고 용맹한 퇴사를 했다거나, 현재의 대한민국으로서는 전혀 보

편화되지 못한 남성 육아휴직을(쉬는 건 아니지만 회사에 가지 않는다는 범주만으로 생각해보자면) 갖

가지 불이익을 무릅쓰고 썼다거나, 직업이 김앤장 변호사이거나 행정고시에 합격한 고위 공무원쯤 되

는 사람이므로 하던 일을 멈추고 조직에서 공짜로 보내주는 해외 유학을 가게 되었다든가, 죄를 짓고

교도소에 간다든가, 큰 병에 걸렸다는 선고를 받고 투병을 시작했다거나, SNS에 꼬물꼬물 올려댔던 글

들이 세간의 이목을 끌어 전업 작가를 제안받았다든가, 그것도 아니면 회사에서 '정직' 같은 징계를 받

아 강제로 쉬고 있다든가 하는 사건들 말이다.

고백하건대, 서소 씨는 마지막 케이스였다. 그는 정직 처분을 받고 몇 달 전부터 회사에 가지 않고 있

었다. 그가 회사에 가지 않게 된 사정, 그러니까 징계를 받게 된 사정에 대해 궁금해하는 사람들이 많

았지만, 아마도 그는 그걸 밝히지 않을 것이다.

서소 씨는 "나도 그걸 무척 밝히고 싶습니다. 하지만 그러려면요, 나는 회사를 그만두고 변호사가 필

요한 싸움을 준비해야 할지도 몰라요"라고 말했다. 그는 그에게 적용된 혐의가 무고하다는 것을 밝힐

수 있는 논리와 증거를 면밀히 준비해 두었으며 그에게 벌어진 일에 대해 알고 있는 동료와 변호사들

로부터 넉넉한 지지 또한 받을 수 있었지만, 싸움은 하지 않기로 했다. 그러는 대신 그는 자신의 사정

을 편지의 형식을 빌려 써냈다. 그의 사정이 정당하다는 근거 또한 촘촘히 보태어 회사에 제출하였다.

그리고 마침내, 이해를 시켰다. 없던 일로 할 수는 없었지만 회사는 서소 씨에게 근신이 끝나면 반드

시 돌아와 주었으면 좋겠다고 말했고 그저 운이 좋지 못했던 것일 뿐이라고 말해주었다. 서소 씨는 거

기에 마음이 조금 풀어져 버렸다.

징계로 받은 사 개월의 정직에 휴직을 한 달 더하니 무려 다섯 달을 쉴 수 있었다. 서른 후반의 평범

한 회사원에게 오 개월의 쉼이라는 것은 특별한 사건이나 결심 같은 게 있지 않다면 절대로 갖기 어려

운 것이라고 생각했다. 적절한 모양새로 찾아온 것은 아니었으나 어쨌든 그 앞에 놓인 안식은 무척이

나 달콤해 보였으므로 덥석하고 물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무엇보다도, 막상 회사와 싸우게 된다면 돈

이 없어서 무조건 질 것 같았다. 이겨도 돈을 많이 잃을 것 같았다. 이런저런 이유와 계산들의 결과로,

서소 씨는 회사의 처분을 조용히 받아들이고 휴식을 갖게 되었다.

십이 년을 일했다. 그동안 직장생활을 하면서 가장 끔찍했던 순간은 얼굴에 종이가 뿌려지던 신입사원

때도 아니었고, 못 먹는 술을 억지로 먹다가 코피를 쏟으며 기절했던 날도 아니었다. 그건 '지난 십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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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원의 서소 씨의 일일

년이 어찌어찌 버텨냈고 오늘도 하여간 살아냈으며, 내일도 그럭저럭 힘을 내어 견뎌볼 순 있겠으나,

나는 앞으로 이십 년 아니, 어쩌면 삼십 년쯤 더 이런 나날들을 반복해야만 하는 것이구나'라는 사실을

느닷없이 깨달았던 바로 그 순간이었다. 이건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회사를 다니건, 프리랜서를 하건

아니면 장사를 하건, 하여튼 남의 돈을 먹기 위해서는 견뎌야 했고 모두들 그렇게 하고 있었다. 아무

리 지혜를 짜내도 '나만은 아무래도 그러기가 좀 어렵겠습니다'라는 핑계를 도무지 댈 수가 없었다. 그

보다 약하고, 힘들며, 어려운 사정의 사람들조차 다들 해내고 있었다. 환갑을 지난 그의 어머니 또한

강남의 부잣집에서 상주 베이비시터로 일을 하고 있었다.

서소 씨는 그 일을 계속하겠다는 어머니에게 그런 식모살이 같은 일은 좀 그만두라며 화를 내보았으나,

그의 어머니는 이유식 조금 만들어 주고 기저귀만 제때 갈아주면 부잣집 며느리가 한 달에 이백만 원

씩 주는데 내 나이에 이보다 더 나은 일이 어디 있겠느냐며 네가 그 돈을 줄 게 아니면 가만히 있으라

고 말했다. 그는 어머니에게 한 달에 이백만 원씩 줄 수가 없었으므로 가만히 있었다. 거기서 정말 아

기만 보면 되는 건지 어떤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힘든 일일 것이다. 남의 집에서 먹고 자는 일인데

쉬울 리가 없다. 누구나 그렇게 힘겨운 삶을 살아내고 있다는 것,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 그래야만 한

다는 것을 그도 받아들여야만 했다. '아무래도 좀 이상한데. 나만 유독 힘든 것 같은데'와 같은 생각이

스멀스멀 올라오려면 티브이에서 또는 어디선가 읽거나 들었던 퍽퍽한 사연들이 떠올라 그를 부끄럽게

했다.

엊그제 티브이에서 본 것은 북한의 수용소에서 살다가 탈북한 사람이 눈물 이분의 일, 콧물 이분의 일,

그 틈 사이에 그녀의 서사를 욱여넣어 토해낸 삼 년간의 탈북기였다. 그녀는 수용소에서 먹을 게 없어

서 나무뿌리를 캐 먹다가 변비가 생겼는데 더 이상 똥을 누지 못하면 큰 병이 날까 봐 서로의 똥구멍

을 나뭇가지로 후벼주며 살았다는 끔찍한 이야기를 했다. 똥구멍을 언급할 때는 웃으라고 한 이야기였

겠지만 패널들 중 아무도 웃지를 못했다.

어디를 돌아보아도 그보다 고달픈 사람들 천지 같아서 찍소리도 못 하고 버텨내던 와중이었다. 그러므

로 서소 씨에게 가해진 징계는, 차라리 반가운 것이었다. 덥석하고 물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사람들

앞에서는 "징계를 받다니 내 인생도 참…"이라고 말하며 서글픈 표정으로 위로를 갈구했지만, 내심은

기뻤다.

정직 첫날부터 서소 씨는 바빴다. 그간 하고 싶었지만 미뤄왔던 일들을 할 것이다. 서소 씨는 평소 버

킷리스트 같은 걸 만들어 다이어리에 적어두는 성격이 못 되었고, 특히 이번 휴식은 전혀 예상치 못하

게 찾으므로 구체적인 계획 같은 걸 세울 틈이 없었으나, 어쨌든 오늘 하루만큼은 만족스럽게 보낼 자

신이 있었다.

휴식의 첫날. 그는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항불안제와 마그네슘과 녹차 카테킨 성분이 들어있다는 시큼

한 가루를 한 숟가락 가득 퍼먹고는 고양이처럼 기지개를 켰다. 느긋하고 꼼꼼한 샤워를 마친 뒤 개를

데리고 밖으로 나왔다. 어제보다 조금 더 따뜻한 기운을 품은 바람이 소매 밖으로 삐져나온 양팔을 간

질이며 얼마간 남은 잠기운을 날려 보내주었다. 늦봄과 초여름이 바통을 주고받는, 딱 그 며칠만 느낄

수 있는 포근하고 선선한 바람이 그의 기분을 들뜨게 했다. 로꾸꺼 로꾸꺼 로꾸꺼 말해 말. 콧노래가

절로 나왔다. 다만, 하늘빛이 새침한 게 조금 아쉬웠다. 슬며시 찌푸린 것이 환한 햇살까지 내어주진

않을 눈치였지만 바람이 포근하여 괜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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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원의 서소 씨의 일일

의욕이 넘치고 만 서소 씨는 그의 개(이름: 꿀단지, 5세, 푸들)와 함께 평소보다 훨씬 길고 힘든 코스의

산책을 마친 뒤 땀에 흠뻑 젖어 집으로 돌아왔다. 입 안으로 자꾸만 배어 들어오는 땀을 퉤퉤 하고 뱉

어 내면서 앞으로는 조금 찝찝해도 산책을 먼저 시키고 샤워를 해야겠다고 생각을 했다. 얼려둔 밥을

하나 꺼내 덥히고 동물의 복지를 고려했다는 달걀로 만든 프라이와 간장, 마가린, 어머니가 담가준 열

무 김치를 썰어 넣어 슥슥 비벼 먹고는 부른 배를 등덩거리며 잠시 누워있다가 문득 일어나서는 합정

동에 있는 교보문고에 갔다.

재작년에 서소 씨는 로스쿨 진학을 준비했었다. 그때 법학적성시험 공부를 하면서 접했던 토막토막의

철학 지문들은 그에게 커다란 충격과 자극을 주었다. 이를테면 '사유는 이렇게 하는 것이었구나'라던가

'이 지루한 글의 끝에는 사실 대단한 위로가 있었구나' 하는 것들 말이다. 특히, 니체의 영원회귀를 읽

고 느꼈던 야릇한 감동 - 왜 사는가에 관한 분절되어 있던 생각들이 하나로 이어지며 조금쯤 삶에 의

미를 찾아낸 것 같은 - 은 언제든 떠올릴 수 있을 만큼 강렬한 것이었다. 시험이 끝나면 이 글귀들의

전문을 찾아 반드시 읽어보리라 다짐했지만 일이 바빠서, 바쁜 일이 끝나면 개 목욕을 시켜야 한다든

가, 다이소에 가야 한다든가 하는 소일거리들이 은근하게 적지 않아서 미뤄 두고만 있었다.

서소 씨는 쉬는 동안 철학과 과학을 실컷 읽어볼 요량이었다. 고등학교 수학 교과서를 사다가 처음부

터 다시 풀어보고 싶었고 한자 자격증도 갖고 싶었다. 아직 펴보지 못한 책들이 집에 많이 쌓여 있었

지만, 새 책을 살 것이다. 옷장에 한 번도 입어 보지 않은 옷들이 그득하더라도 때때로 새 옷을 갖고

싶듯이, 매장 언니의 달콤한 말에 속아서 샀다거나 아무도 그 옷을 사라고 종용하지 않았음에도 홧김

에 구입해버린 별로 어울리지 않는 옷들을 억지로 입을 수는 없으므로 새 옷을 사야만 하듯이, 새 책

을 살 것이다.

서점에 가서 시간과 돈을 쓰고 싶었다. 그러고 나면 왠지 행복하면서도 게으르지 않은 휴식의 첫날을

보냈다고 느낄 수 있을 것 같았다. 아무렇지 않은 척하고 있었지만, 사실 요즘 숨을 쉴 때마다 담배를

피우는 기분이었다. 내가 안 보이는 곳에서 '징계나 받고 다니는 사람'이라며 사람들이 수군거리고 있

을까 봐 두려웠다. 얼마 전, 왜곡과 와전을 반복하면서 괴물처럼 자라난 소문이(미쉐린 맨 비벤덤처럼

나왔다) 그의 목을 조르는 꿈을 꿨다. 나쁜 생각들이 텁텁한 연무가 되어 그의 가슴 길목 한켠을 틀어

막고 있는 느낌에 답답했다. 서점의 공기라면 그런 답답함을 잠시나마 날려 보내줄 수 있을 것이라 짐

작했다.

망원예찬

망원동은 아름다운 동네다. 서소 씨는 망원동처럼 완벽한 동네는 없다며 어디에 내놓아도 자신 있다는

호언을 자주 했다. 그가 사는 집은 깨끗하고 아담한 빌라였는데 전세 보증금이 조금 비싼 편이긴 했으

나 부동산 중개인과 동네를 한바퀴 돌아본 뒤 분위기에 반하여 곧바로 계약을 해 버렸다. 삼억. 대출

을 꽤나 받아야 했고, 혼자 살기엔 조금 넓은가 싶은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이혼을 했다고 사십 대 초

반 때처럼 좁은 원룸에 웅크려 오직 생존만을 희구하는 사람처럼 살고 싶지는 않았다. 주차공간이 넉

넉했으며 위층에 방방 뛰는 아이가 없었다. 쓰레기통을 복도에 내놓고 사는 할머니 때문에 가끔 냄새

로 골치를 앓기는 했지만 그래도 말을 하면 치워주었다. 잊을 만하면 자꾸 그런 일을 반복하긴 했지

만.

그가 사는 빌라 앞에는 무얼 파는지 간판도 없는 가게가 하나 있었는데 주말이 되면 사람들이 그 앞에

길게 줄을 섰다. 하지만 평일에, 그것도 낮에는 사람이 거의 없어서 그는 아무 때나 거기에 갈 수 있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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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원의 서소 씨의 일일

다. 알고 보니 한 알에 이천팔백 원짜리 마카롱을 파는 집이라 한 번도 가지 않았으나. 자신이 사는 집

앞에 누군가는 어렵사리 찾아와야만 하는 가게가 있다는 사실은 삼억이라는 비싼 전세보증금에 합리를

부여하는 것 같아 뿌듯했다.

그 가게 말고도 이곳 망원에는 그런 가게가 많았고, 서소 씨는 주말만 아니라면 언제든 그런 가게들을

여유롭게 드나들며 즐길 수 있었다. 사실, 사람들이 줄을 서는 가게에 별로 가본 적은 없지만 가든 혹

은 가지 않든 언제든 갈 수 있다는 것과 그럴 수 없는 것에서 오는 기분의 차이는 결코 작지 않다.

그의 집에서 걸어서 삼 분 정도의 거리에 망원시장이 있었다. 시장을 다녀본 적이 별로 없는 그였으나

망원동에 살면서부터 시장을 자주 찾게 되었다. 더 신선하다거나, 더 저렴하다거나, 그런 것도 시장을

찾게 만드는 좋은 이유가 되었지만, 집에서 삼 분 거리에 시장이 있으면 음식이든 식재료든 혼자서 한

번에 먹을 수 있을 딱 고만큼만 조금씩 사다 먹을 수 있다는 점이 무엇보다 좋았다. 그는 맛없는 음식

도 대체로 잘 먹는 편이었지만 도무지 먹기 싫어하는 음식이 있었는데 바로 재탕한 음식, 전자레인지

로 데운 음식들이 그러했다. 망원동에 이사를 온 뒤부터는 갓 만들어낸 탱글탱글하고 바삭한 음식들로

밥상을 차릴 수 있었다.

서소 씨는 스물여덟 살 때부터 혼자 살았다. 회사 근처에 살면서 출퇴근 시간을 줄이려고 그렇게 했던

건데, 그런 만큼 이직이나 사옥 이전과 같은 일이 있을 때마다 이사를 다녀야 했다. 그런 연유로 여러

동네에서 살아볼 기회가 많았던 그는 '언덕이 없는 동네'에 산다는 것이 주거 만족에 대단한 영향을 준

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언덕이 있고 없고가 그 동네의 분위기를 좌우했다.

언덕이 많은 동네는 이쪽 편에서 저쪽 편이 보이지 않아 우울하였다. 집들도 삐뚤빼뚤 정돈되지 못한

모양새로 지어졌다. 으슥한 골목이 많았다. 공영 주차장 같은 게 생기기 어렵고 걷기도 힘들다. 외부

사람이 찾지 않는다. 그러니 좋은 가게가 생기기 어렵다. 언덕이 많은 동네는 이런 악순환을 반복하면

서 활기를 잃어가는 것 같았다.

망원동에는 언덕이 없었다. 저기 멀리서도 차가 지나다니는 게 잘 보여서 안전하게 개를 데리고 걷기

좋았다. 아담하고 예쁜 가게가 많았고 프랜차이즈가 별로 없었다. 망원시장이 있는 한 이곳은 더 이상

개발되지 않을 것이다. 망원시장이 있는 한 이곳에 사람이 계속 모여들 것이다. 앞으로도 한참 동안

이곳 망원동은 너무 조용하지도 너무 복작거리지도 않은, 적절한 활기를 가진 동네로 남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좋았다.

그가 사는 동네에는 언덕이 딱 하나 있었는데(언덕이라고 해봐야 걸어서 2분, 약간 볼록하게 솟은 것

이 '둔덕' 정도가 맞을지도 모르겠다) 그 언덕을 올라가면 망원 한강공원이 나왔다. 이 공원 또한 몹시

적절한 것이 서소 씨의 마음에 쏙 들었다. 여의도 한강공원처럼 '나 오늘 힐링하러 왔소' 하는 사람들

이 폭풍처럼 다녀가는 곳이 아니었으며 성수대교 바로 아래 강변처럼 몇 년째 관리되지 않아 무성하게

자라다 누렇게 죽어버린 잡초더미와 쓰레기가 굴러다니는 곳도 아니었다. 시멘트에 싸구려 분홍색 페

인트를 조악하게 발라놓은 것이 아닌, 오르내릴 때 삐걱-하며 느낌 좋은 소리가 나는 큼직한 나무 계

단이 있었고, 아담한 잔디밭과 농구대, 달리기 트랙이 하나씩 있는 작은 공원이었다. 누군가 내게 '아

는 사람만 아는 멋진 곳을 하나만 꼽아보라'고 한다면 주저 없이 '여기요'라고 말할 수 있는, 그런 곳이

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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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원의 서소 씨의 일일

작은 공원이었지만 거기서 바라보는 한강은 여의도공원에서 한강을 바라볼 때 못지않은 가슴 벅찬 청

량함을 충분히 전해주었다. 늦은 밤 산책을 나가 그 공원에서 한강 건너편을 바라보면 콘래드 호텔과

국회의사당에서 어룽어룽하게 빛나는 조명이 은은하여 아름다웠다. 비록 그 안에서는 국회의원들이 빠

루를 들고 휘두르거나 서로 팔짱을 끼고 드러누워 있을진 몰라도 망원 한강공원에서는 그런 모습이 보

이지 않았으므로 상관없었다. 그 공원에는 그가 '개들의 동산'이라 이름 붙인 작은 잔디 언덕이 하나

있었는데, 밤마실을 나와 조우한 동네 개들이 서로의 엉덩이 냄새를 맡으려 쫓아다니는 모습이 그곳의

정경에 생동감을 더했다. 나무 계단에 앉아 그의 개를 쓰다듬으며 그런 것들을 가만 보고 있자니 몹시

그윽한 감정이 들면서 눈물이 핑하고 돌 때도 있었다. 서소 씨는 그런 정경이 있는 망원 한강공원을

무척 좋아했다.

전날 완벽한 하루를 보낸 서소 씨는 완벽한 아침을 맞고자 했으나 이른 아침부터 전화기가 울려대는

통에 실패했다. 그것도 여러 번, 그가 신경질이 난 것인지 전화기가 신경질이 난 것인지 모르겠으나

하여튼 전화기는 신경질적으로 랄랄거리며 한참을 자지러졌다. 회사에서 갑자기 나온 것이기 때문에

어느 정도의 업무 연락이 있을 것이라는 예상은 했지만, 이렇게 이른 아침부터 이렇게나 자주 올 줄은

몰랐다. 받아보면 대개 별일도 아니었다. 강제로, 그것도 정직 중인 사람에게 업무를 묻는 전화 때문에

잠이 깼다는 사실에 불쾌해진 서소 씨는 개를 데리고 산책을 다녀오자마자 다시 침대로 기어가 버렸

다.

억지로 비벼 뜨는 일은 없을 것이다. 늘어지게 잠을 자고 일어나서는 수학책을 폈다. 몇 개의 공식을

외우고 비슷한 문제를 반복해서 풀었다. 수학책을 펼치기 전에는 혹시 기억이 나지 않거나 재미가 없

을까 봐 걱정했는데 우려했던 것과 달리 꽤 재미가 있었다. 더 이상 무언가를 머릿속에 집어넣고 싶지

않을 때까지 외우고 문제를 반복하다가 수학책을 덮고 철학책을 하나 골라 집을 나섰다. 하늘이 채도

높은 짙은 푸른색을 띠는 것으로 보아 오후 서너 시쯤 된 듯하다. 정확히 어디로 갈지 정하진 못했지

만, 아무튼 카페로 갈 것이다.

카페 'B'

서소 씨는 빌라 계단에 묶어두었던 자전거를 꺼내 낑낑대며 짊어지고 내려왔다. 오랜만에 꺼내는 자전

거였다. 그 자전거는 서소 씨가 이혼을 하자마자 구입한 첫 번째 물건이다. 이혼에 관한 모든 절차를

마치고 집으로 터덜터덜 돌아오던 그날, 서소 씨는 여러 가지 감정을 동시에 느꼈다. 잘 좀 살아보려

했던 인생이 쫄딱 망해버린 것만 같은 자괴에 속이 울렁거렸다. 그냥, 마음이 많이 아팠다는 말이다.

공장 초기화 버튼이 눌리는 바람에 모든 데이터를 상실해 버린 전화기가 된 것 같은 기분도 들었는데,

그건 조금 좋았다. 팔이나 다리 같은 신체 부위 중 하나가 갑자기 사라져 버린 것 같은 먹먹하고 아릿

한 느낌과 시간과 돈을 신경질적으로 써제끼고 싶다는 욕구도 느꼈다. 그 욕구는 특히 강렬하게 느껴

졌다. 살림살이 같은 걸 죄다 내다 버리고 다시 장만하고 싶었다.

집에 오자마자 그녀와 함께 타던 자전거를 내다 버렸고 소파도 버렸으며 세탁기와 냉장고와 티브이는

헐값에 팔아버렸다. 신혼여행 갔을 때 쓰려고 했던 미러리스 카메라, 그녀와의 행복했던 시간이 담겨

있던 그 물건 또한 중고장터에 팔아버렸다. 구매자는 커플 수면바지에 딸딸이를 신고 나온 신혼부부였

다. 남편의 팔짱을 꼬옥 끼운 여자가 만 원만 네고를 해 달라고 조심스레 물었는데 싫다고 했다.

팔기 전 사진을 지울 때 '포맷하시겠습니까?'라고 카메라의 질문을 보고는 이혼하던 날 판사가 '서소

씨, 그리고 F씨. 마지막으로 묻겠습니다. 이혼에 동의합니까?'라고 물어봤던 순간이 생각나 가슴이 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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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원의 서소 씨의 일일

쿡 아팠다. 그날, 서소 씨도 그녀도 단번에 대답하지는 못했다. 책상과 침대는 부수어서 나무판만 남겨

두었는데 남은 나무판은 잘라서 새 가구를 만들어 보기로 했다.

몇 시간 동안 땀을 뻘뻘 흘리며 부수고 내다 버렸더니 팬티까지 흠뻑 젖었다. 팬티와 셔츠를 벗어 던

지고 샤워를 하자 머리가 조금 맑아지고 눈물이 가셨다. 수건으로 머리를 털면서 맥주를 한 캔 땄다.

사실 서소 씨는 술을 못 마신다. 취하기도 전에 숙취가 왔다. 지금 손에 들고 있는 맥주도 한두 모금

마시고 대부분 싱크대에 꼴꼴꼴꼴 부어 버리겠지만, 터덜터덜 돌아왔던 그날은 왠지 맥주 캔을 치익하고 따서 크게 한 모금 마시고 크윽- 하는 소리를 낸 뒤 버려 버리는 낭비를 하고 싶었다. 그는 맥주

의 첫 번째 딱 한 모금만큼은 좋아했다. 한 손엔 맥주 캔을 들고 다른 쪽 손가락으로 노트북에 '자전

거'라고 입력하고는 엔터를 쳤다.

레트로한 디자인의 자전거를 갖고 싶었다. 예전에 타던 자전거는 그와 이별한 여자가 안장이 높지 않

은 자전거를 원했기에 그에 맞춰 샀던 것으로 서소 씨가 원하던 것은 아니었다. 그는 둔해 보이지 않

도록 얇은 바디로 만들어져 있고, 큼직한 브랜드 로고 같은 게 붙어 있지 않으며, 베이지색이나 하늘

색처럼 산뜻한 파스텔톤으로 칠해진 자전거가 갖고 싶었다. 바퀴에는 하얀색 타이어가 끼워져 있었으

면 했고, 안장은 큼지막한 쇼바 스프링 같은 게 우악스럽게 붙어있지 않은 것이길 바랐다. 밤에도 잘

다닐 수 있도록 자가발전 전구가 하나 달려있었으면 했는데 그 전구의 디자인은 둥글둥글하니 예스러

운 것이었으면 했다.

며칠을 뒤져댄 끝에 어렵게 수제 자전거 업체를 하나 찾았고, 주문을 의뢰하여 거의 한 달 만에 받아

볼 수 있었다. 오래 기다렸던 만큼 만족스러운 물건이 와서 다행이었다. 예쁜 바구니도 하나 달고 싶

었는데 그 업체에서 파는 바구니들이 그렇지 못하여 바구니는 따로 구해서 달았다. 까탈스러운 그의

취향에 맞는 바구니는 해외에서만 파는 제품이어서 배송에만 또다시 한 달이 걸렸고 한 달 만에 도착

한 바구니는 자전거의 아귀와 맞지 않는 바람에 그의 속을 썩였지만, 서소 씨는 자전거 앞에 몇 시간

동안 쪼그리고 앉아 펜치로 꺾고 구부리고 하더니 간신히 그럴듯한 모양으로 다는 데 성공했다. 그렇

게 고생해서 손에 넣은 자전거였으나 막상 몇 번 타지를 못했다.

어려서부터 스무 번이 넘게 자전거를 도둑맞았던 그로서는 아끼는 자전거를 빌라 밖에 세워둔다는 게

쉽지가 않았다. 그래서 그가 사는 집, 202호 문 앞 계단에 묶어 두었다. 탈 때마다 이고 지고 계단을

오르내리는 것이 번거로워 처음에만 몇 번 타고 그 뒤로 그의 자전거는 계단 난간에 몇 달째 붙어만

있었다. "흐끄응. 후-" 서소 씨는 빌라 앞에 자전거를 내려놓은 뒤 이곳저곳을 살펴보았다. 먼지에 쌓

여 있길래 후후 불고 손으로 쓸어낸 뒤에 올라탔다. 페달을 세차게 한 번 밝았더니 자전거가 맥아리

없이 비실거렸다. 바퀴에 바람이 빠져있었다. 짜증이 솟아 자전거를 다시 계단 위에 올려놓으려다가

어렵게 짜증을 삼키고 동네 자전거포에 끌고 갔다. "저… 자전거 바퀴에 바람 넣는 건 얼마씩 하나요?"

자전거포 사장은 대꾸도 없이 인상을 쓰면서 들고 있던 렌치로 에어컴프레서를 땅 하고 한 번 쳤다.

서소 씨는 뭘 어쩌라는 겁니까, 라는 표정으로 호주머니에서 천 원짜리 몇 장을 주섬주섬 꺼내 보이며

말했다. "바퀴에 바람 좀 넣어 주세요,"

사장은 다시 인상을 쓰더니 에어컴프레서를 쳐다보며 공짜니까 그냥 넣고 가라고 했다. 사실 그는 자

전거포에서 보통 바퀴 바람 정도는 공짜로 넣게 해 준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어렸을 때 바람 빠진 공

이나 자전거를 가져가도 말도 없이 바람만 넣고 나와도 괜찮았던 기억이 분명했지만 그렇게 해본 마지

-8-

회사원의 서소 씨의 일일

막 기억이 스무 살 즈음, 그러니까 거의 십팔 년 전쯤이어서 요즘엔 안 되겠거니 하는 생각으로 물어

본 것이었다. 그런데 여전히 그래도 되나 보다. 그리고 자전거포 사장은 서소 씨가 자전거를 끌고 오

는 걸 보고 수리하러 온 줄 안 것 같은데 아니라서 심통이 났나 보다.

에어컴프레서를 오랜만에 써봐서인지 바람이 잘 들어가지 않아 한참을 헤맸다. 자꾸만 삑사리가 나서

허공에다 췩- 췩- 거리고 있는데도 사장은 도와주지 않았다. 어찌어찌 바람을 넣은 그는 이럴 거면 돈

천 원 받고 좀 넣어 주지라는 생각을 하며 개를 바구니에 넣고 고정을 한 뒤 비로소, 익숙한 느낌으로

페달을 밝을 수 있었다. 이제 카페에 갈 수 있다.

사실 그에게는 눈여겨 둔 카페가 이미 있었다. 바로 카페 'B'다. 그는 앞으로 다니게 될 카페가 가급적

넓은 곳이었으면 했다. 집에만 있기 답답하므로 굳이 돈을 들여 밖에 나와서 책을 읽자는 것인데 또

좁은 공간에 들어가는 것은 싫었다. B는 웬만한 프랜차이즈 카페만큼 넓었고 커다란 8인용 책상이 있

었으며 야외에도 멋진 테이블들이 놓여 있어 평소 눈여겨 두었던 곳이었다. 테이블들의 높이와 넓이가

책을 읽기에 적절해 보였다. 자신감이 지나치게 넘치는 아이돌 댄스 음악이나 돈을 많이 벌어 좋아 죽

겠다는 힙합이 아닌 재즈를 틀어주었고 볼륨 또한 적절했다. 작은 조명들이 여러 개 달려있었는데 거

기서 나오는 빛들이 차곡차곡 쌓여 카페를 그윽하게 밝혀주는 느낌이 좋았다. 커피는 사천오백 원으로

예상보다 오백 원이 비쌌으며 심지어 커피 맛도 별로였지만, 그래도 카페 B가 가장 괜찮을 것 같았다.

거기에는 무척 친절한 두 명의 여자 사장님들이 있었다. 그러니까 어느 정도로 친절했냐면, 언젠가 서

소 씨가 가를 데리고 간 적이 한 번 있었는데 그가 데려간 개 더러 먹으라고 물과 강아지용 쿠키와 담

요를 따로 내어줄 정도였다. 사장님들이 예쁜가는 중요하지 않았다. 서소 씨는 정직 기간 중에 진심으

로 책 읽는 일에만 몰두할 요량이었기 때문이다. 다만, 우연하게도 카페B의 사장님들이 예뻤다는 것은

그로서도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바람을 채워 넣은 자전거가 부드럽게 굴러갔다. 원래는 곧바로 카페 B에 가려 했으나 자전거를 오랜만

에 타서 신이 난 서소 씨는 B를 지나쳐 좀 더 달렸다. 자주 다니던 골목길 말고 가본 적이 없는 골목

길을 돌아보기로 했다. 처음 망원동에 이사 왔을 때 어쩌다가 길을 한 번 잘못 든 적이 있었는데, 그때

그 골목에서 재밌는 가게들을 많이 발견했던 게 생각났다.

그리스나 일본, 프랑스의 가정식을 전문으로 하는 독특한 식당과 중국에서 만들어지진 않았을 법한 단

정한 소품들을 쌓아 놓은 인테리어 소품샵, 그리고 반려동물 옷과 용품들을 파는 가게가 있었던 기억

이다. 그는 그때 보았던 반려동물 옷 가게를 찾고 있었다. 지나가면서 얼핏 본 게 전부였지만 인터넷

쇼핑몰 같은 곳에서는 구하기 힘든 특이한 강아지 옷들이 걸려 있던 것을 분명히 보았다. 이쪽 골목이

었는지 저쪽 골목이었는지 기억이 분명하지 않아 자전거에서 내려서 천천히 걸으며 거리를 살폈다. 호

기심이 이는 가게를 발견하면 멈춰 서서 사진을 찍었다. 시간이 많다는 사실을 그런 식으로 만끽해 보

았다.

한참을 돌아다닌 끝에 기어이 봐 두었던 동물 옷 가게를 찾아낸 그는 몇 개의 옷을 만져보고 입혀보고

하더니 코듀로이 재질로 된 브라운색 방울 단추와 같은 텍스쳐의 카라가 달려있는 셔츠를 하나 골라

그의 개에게 입혔다. 개 옷에 코듀로이라니. 이건 구하기 어려운 것이다. 그 옷을 입히고 나니 왠지 그

도, 그의 개도 망원동에 어울리는 '힙한' 무언가에 조금 가까워진 듯하여 기분이 좋았다. 늘씬한 클래

식 자전거를 타고 코듀로이 셔츠 입은 개를 바구니에 태워 가자 사람들이 쳐다보았다. 남자든 여자든,

-9-

회사원의 서소 씨의 일일

아줌마든 아가씨든 그의 개에게 시선을 빼앗기는 것이 느껴져 으쓱했다. 그의 개도 기분이 좋은지 그

날따라 평소보다 늠름한 자세로 바구니에 앉아 눈을 가늘게 뜬 채 바람을 맞았다. 그들은 아까 지나쳤

던 그 카페, B로 돌아왔다.

"꺅-" 들어가자마자 여사장이 큰 소리로 반응하는 바람에 사람들이 그들을 쳐다보았다. 여자 손님들

사이에서 감탄이 터져나왔다. 어머, 쟤 좀 봐. 너무 귀엽다. 서소 씨는 시큰둥한 표정으로 천장을 쳐다

보았으나 내심은 기뻐하는 중이었다. 그는 그의 개를 슬링백처럼 생긴 포대기에 넣어 다녔는데, 그의

개는 슬링팩 포대기에 들어가면 자동차를 운전하는 사람이 풀을 문짝에 올리고 무심하게 나른한 폼으

로 턱을 괴는 것처럼 한쪽 팔을 포대기에서 빼놓고 다녔다.

사람들은 그의 개가 취하는 그 포즈를 보면 박수를 쳤다. 신기해했고 귀여워했다. 그의 개는 몹시 꾀

바른 편이라 누가 자신을 예뻐하는지 잘 알았고 거기에 맞춰 애교도 부리고 팔도 걸치고, 마음에 안

들면 왕왕 짖기도 하고 그랬다. 사람들이 그의 개를 예뻐하면 왠지 그도 같이 예쁨을 받는 것 같아 쑥

스럽고 기분이 좋았다. "안녕하세요.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잔만 부탁드려요." "네, 오랜만에 오셨어요.

안녕, 아가야. 강아지 이름이… 뭐였죠?" "아, 단지예요. 성은 꿀. 합해서 꿀단지." "안녕, 꿀단지- 아유,

너무 귀여워요." "하하, 고맙습니다."

카페 B는 이 동네에서 가장 늦게까지 문을 여는 카페였다. 밤 열한시, 손님이 있으면 열두 시까지도

문을 닫지 않았고 카페였지만 밤에는 맥주와 와인을 팔았다. 거의 밤 열두 시까지 열려 있는 게 보통

이었다. 서소 씨처럼 일과를 늦게 시작하여 늦게 마치는 사람과 잘 맞았다. "여기 단지 물이랑 담요예

요." "네네, 매번 고맙습니다."

그녀가 물과 담요를 챙겨주었다. 서소 씨가 올 때마다 여사장이 그런 것들을 챙겨주었으므로 그는 그

걸 자연스럽게 받아들였지만 사실 그녀가 아무에게나 그렇게 대해주는 것은 아니었다. 허벅지 위에 얇

은 담요를 깔고 그 위에 개를 올려놓았다. 그렇게 하자 그의 개는 책을 쥔 서소 씨의 손에 턱을 올려

놓더니 이내 꾸벅하고 졸았다. 개가 졸기 시작하자 그도 책을 펴서 읽기 시작했다.

꼼짝도 하지 않고 읽기만 했다. 가끔 그의 개가 낑낑거리면 데리고 나가 오줌을 누이고 똥을 누이고,

그도 화장실에 가서 소변을 보고 오는 시간들 외에는 내내 읽기만 했다. 열한 시가 되자 서소 씨는 조

용히 일어나 담요를 개켜놓고 컵을 반납한 후 집으로 돌아갔다. 집으로 돌아가던 도중, 누슨 겨를인지

헤어진 아내의 생각이 갑자기 떠올라 곤란하였다. 선 채로 잠시 눈물을 훔치다 집으로 가는 걸음을 이

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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