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본질적인 고독과 공간 그리고 소리
비가 오면 '돌담에는 시간만 피어서 나를 부르는' 압해도는 시적 화자가 끝내 닿을 수 없는 불가능의 지평 위에 떠 있는 섬이며 인간의 본질적인 고독과 적막 감으로 충만한 공간이다. 뼈마디 부딪는 소리를 내며 까마귀 우는 압해도는 언 제라도 나와 함께 울고 슬퍼할 수 있는 공간이다. 특히 노향림의 시에 있어서 비는 그 추억의 공간으로 이끄는 시적 대상물이다. 오랜 몸부림이 끝나고 죽음과 같은 고요가 오고 겨울의 긴 계절이 끝나면 몇 작품의 시가 완성되어 나온다고 노향림이 말했듯이94)「봄비 1」,「봄비 2」와 같은 작품에서는 봄과 비라는 이미지를 통해 자신의 삶의 과거를 돌이켜 본다. 이숭원은 「봄비 1」「봄비 2」를 신생과 부활의 이미지가 아니라 자책과 회 한의 의미로 제시되어 있다고 하면서 아쉬움과 추억의 시라고 정의한다. 또한 봄을 흥겨운 소생의 계절이 아니라 바람이 떠돌고 추억이 배회하는 회한의 공간 이다95)라고 지적한다. 이처럼 이들 작품을 지배하는 자아의 정서적 바탕에는 봄 이라는 회한의 공간이 자리하며 또한 비라는 이미지를 통해 그 의미를 드러내준 다. 위의 시 압해도도 비라는 이미지를 통해 추억의 공간을 형상화하는데 이는 바 슐라르의추억하는 물96)의 몽상적 이미지와 관련되어 나타나는 것으로서 비 는 가 닿을 수 없는 세계에 대한 그리움이라는 상징적 의미를 지니게 된다. 스 스로 물소리를 만들며 과거로 흘러가기도 하며 사진첩을 펼친 듯 환히 어두어져 오는 봄밤으로 이끌리는 것처럼 비가 오는 날이면 나를 부르는 압해도라는 추억 94) 노향림,「새로운 화법과 긴장감」, 《시와 반시 98》, 제26호, p.303. 95) 이숭원,『초록의 시학을 위하여』, 청동거울, 2000, p.293. 96) 바슐라르, 김현 역, 『몽상의 詩學』, 홍성사, 1978, p.219. - 57 - 의 공간으로 향한다. '배가 뜨지 않는 앞바다'. ' 바다가 풀뱀처럼 숨어서 가는' 그 쓸쓸함은 곧 적막한 시인의 내면적 정황이나 움직임을 말하며 이는 지금의 현실에서 느끼는 쓸쓸함이나 적막함의 근원이 압해도라는 섬과 연관되어 있음을 의미한다. 곧 황량한 바닷가와 외로운 섬 압해도의 기억 속에서 자신의 고독을 반영하는 내면의 풍경을 표출한다. (2) 죽음을 인식하는 고독의 공간 압해도는 우리나라 서남단 다도해에서 육지인 목포시와 가장 가까운 섬이다. 1992년 노향림은 '압해도'라는 부제가 붙은 60여편의 연작 시편으로 구성된 『그리움이 없는 사람은 압해도를 보지 못하네』를 펴낸다. 맑은 날이면 압해도는 안보이네 둔덕 너머 사는 여자들이 허리춤에 제각기 갈쿠리와 그물을 차고 나갔다가 살이 까지거나 허벅지가 긁힌 채 모두 빈손으로 돌아오네 (... 중략 ...) 살아서는 아무도 보지 못하는 섬 실눈을 뜨고 그 섬을 몰래 본 사람들은 인기척도 없이 어디론가 사라지네 - 58 - -「해녀 - 압해도 1」일부 '노란 물이 든 잇몸을 저희끼리 드러내는'(집) 계란 꽃의 모습이나, '화분에 갇 힌 선인장이 밤이면 남몰래 砂漠을 숨겨 가지고 우는'(화분) 일은 '天山北路, 아 직 가지 않아서 눈이 부시도록 밝은 달이 떠 있는 그 곳'(호랑나비를 보다)을 향 한 노향림의 고독과 외로움이라 보았을 때 노향림의 그리움은 추억과 회한에 이 르게 된다. 즉 추억과 회환에 이른 기억 속의 섬 압해도는 일상의 무의미성을 견디며 뜻 없이 반복되는 나날의 삶 저 너머에 존재하는 섬이다. 그러나 그의 고독은 현실에 대한 비극적인 인식으로 인해 더욱 더 절망할 수밖에 없다. 노향림의 섬은 '살이 까지거나 허벅지가 긁힌 채 모두 빈손으로 돌아오는' 황 폐한 섬이다. 섬을 실눈을 뜨고 바라보면 그 섬을 본 사람들은 어디론가 사라진 다는 죽음의 섬이다. 죽음의 냄새가 음습하게 퍼져 있는 섬 압해도는 인간의 삶 의 유한함을 인식해야 하는 허무와 절망을 내재한 섬이다. 압해도에 한번 들어온 것들은 병명도 모른 채 삭고 있다. 익사체 한구 떠오르지 않아 내가 나를 가두어버린 먼 압해도 -「달맞이 꽃 핀- 압해도 66」일부 -「추억 - 압해도 69」일부 - 59 - 바다가 몸 속 깊숙이 감추어든 수벌들을 날려 보내며 끝없는 죽음을 발신음으로 手話하면 거친 물결이 스스로 몸부림쳐 길이 되어 돌아올 때 쯤 몇 구의 죽음이 희미한 남폿불을 들고 돌아온다. 그의 생의 적막감과 고독감의 배경이 된 목포 앞바다에 떠있는 섬 압해도는 시적 화자가 끝내 닿을 수 없는 유한한 존재인 인간의 한계점을 깨닫는 공간으 로 제시된다. 결국 그녀가 제시한 압해도의 공간은 '내가 나를 가두어버린' 절망 의 공간이다. '병명도 모른 채 삭고 있는' 것들이며 '몇 구의 죽음이 희미한 남 폿불을 들고 돌아오는' 것이다. 시신을 실은 수레가 산정동 집 창문 옆으로 지 나 목포 앞바다에서 수장되는 장의 행렬을 가까이서 보았던 어린 시절의 경험 과도 무관하지 않지만, 그보다는 그 행렬을 혼자 바라보던 고독감이 '나'를 가두 는 절망감에 더 많은 영향을 미친다. 인간은 본질적으로 고독한 존재로서 그 고독감에 젖을 때 삶과 죽음을 만나게 된다. 즉 노향림의 기억 속의 섬 압해도는 죽음의 소식이 감도는 불길하고 쓸쓸 한 섬이다. 그 고독은 죽음의식에 결부되어 있으며 여기서 노향림이 말한 죽음 은 죽음으로 끝나기 마련인 인간의 유한성의 의미를 내포함으로써 인간의 허무 와 절망을 더욱 더 절실하게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고독과절망은비극적자기인식의공간에머무르지않고 꿈꿀수있 - 60 - -「알의꿈 -압해도64」일부 는 힘의 원천을 획득하고자 한다. 인간이면 누구나 죽음을 면할 수 없는 유한한 존재임에 대한 비극적 인식이 압해도에 대한 그의 시선을 절망에 머무르지 않고 시원을 향한 그리움의 공간으로 표출된다. (3) 시원을 향한 그리움의 공간 노향림의 그리움은 어디서부터 존재하는가. 그것은 그가 선택한 적막하고 고 요한 풍경이 그의 외로움에서 비롯된 비극적 인식에 기인한 것이다. 현실에 안 주하지 못하는 끝없는 불안과 허무 의식은 떠도는 시간 속을 헤매는 자아를 발 견하기도 하며 그 내면의 추억이나 회한 속으로 침잠해 가기도 한다. 그가 닿고 자 했던 공간이 추억과 회한의 공간인 이유가 여기에 있으며 그렇게 밖에 할 수 없는 존재에 대한 절망감은 더욱 깊어간다. 압해도 사람들은 압해도를 보지 못하네 이마받이를 하고 문득 눈을 들면 사람보다 더 놀란 압해도 귀가 없는 압해도 반 . 고흐의 마을로 가는지 뿔 테 안경의 아이들이 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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