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폰의 탄생배경
2007년, IT 삼국지 전체 역사를 통틀어서도 가장 커다란 사건 중 하나가 발생한다. 마이크로소프트라는 거함에 일방적으로 밀리던 애플은 스티브 잡스가 복귀 한 이후 어느 정도 수준까지 예전의 명성을 회복했지만, 아직 판도를 바꿀 정도는 아니었다. 오히려 새롭게 떠오른 구글이라는 신성이 인터넷 영토를 지배하기 시 작하면서 마이크로소프트를 바짝 위협하던 것이 2000년대의 판도였다. 이 판도에 애플의 자리는 아주 작았다. 그러나 이 판도를 뒤흔든 사건이 바로 '아이폰' 출시다. 이 아이폰 비밀 프로젝트 아이팟이 성공을 거두자, 스티브 잡스는 비밀리에 애플의 미래를 책임질 새로운 프로젝트인 아이폰 개발을 지시한다. 스티브 잡스는 아이폰이 성공하려면 새로 운 사용자 인터페이스(UI)가 필수적이라고 생각했다. 특히, 터치스크린 관련 기술에 집중하면서 동시에 통화가 가능한 새로운 형태의 디바이스를 창조하고자 했다. 당시 애플 내부에는 전화 관련 기술이 없었다. 스티브 잡스는 1위 업체인 버라이존을 따라잡기 위해 절치부심하던 싱귤러 와이어리스(후에 AT&T;에 인수 합병된다)와 접촉했다. 비밀리에 상호 협력하기로 하고, 대신 아이폰의 독점 통신사업자 권한을 상당기간 유지해 주었다. 애플은 아이폰을 2007년 1월 9일 일반에게 공개한다. 이 프로젝트를 위해 30개월간 비밀을 유지하며 개발했고 개발비만도 약 1억 5천만 달러를 소요한 것으로 추정되었다. 그야말로 애플의 미래를 건 프로젝트였다. 이런 필사적인 노력의 결과로 애플이 구글과 마이크로소프트를 제치고 최고 시가총액을 가진 기업으로 떠오른 것이다. 스티브 잡스가 싱귤러 와이어리스에게 요구한 것은 아이폰 하드웨어 및 소프트웨어 개발 전반에 대한 자유였다. 간단하고 단순한 요구인 것 같았지만, 이는 이동통신사가 재량권을 가지고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전반을 휘두르던 당시까지의 관행을 송두리째 바꾸는 요구였다. 하지만 싱귤러는 이를 받아들이면서 아이 폰을 탄생시키는 산파 역할을 기꺼이 맡았다. 애플이 사운을 걸고 개발한 아이폰은 2007년 1월 9일 맥월드 행사장에서 스티브 잡스의 키노트 강연을 통해 일반에 모습을 드러낸다. 이미 개발을 완료한 상 황이었지만, 아이팟과는 달리 휴대폰은 조금 더 엄격하게 규제받는 품목이었기 때문에 미국 연방통신위원회(FCC)의 허가가 필요했다. 이 때문에 수개월의 시간 이 지체되었지만 결국 2007년 6월 29일 역사적인 판매를 시작했다.
아이폰 판매 당일, 미국 전역의 애플 스토어에는 아이폰을 받기 위해 기다리는 사람들이 텐트까지 치며 장사진을 이루었다. 뒤를 이어 11월에는 영국과 프랑 스, 독일 등 국가에 발매하면서 미국뿐 아니라 전 세계적인 히트 상품이 되었고 2008년 7월 11일에는 아이폰 3G를 22개 국가에서 판매하기 시작했으며, 2009 년에는 3GS 그리고 2010년에는 아이폰 4를 발매하면서 오늘에 이르고 있다. 애플은 아이폰 판매를 시작한 후 1년 남짓한 기간 동안 610만 대정도를 팔았다. 2009년 말을 기준으로 할 때 전체적으로 3,375만 대라는 기록적인 판매량을 보였다. 2008년 4분기 판매량이 당시까지 스마트폰의 대명사였던 캐나다 리서치 인 모션(RIM) 사의 블랙베리를 넘어서면서 세계 최고 스마트폰 자리를 차지했고, 그 기세는 현재까지 지속되고 있다. 위기를 극복한 프로젝트 아이폰이 정식으로 나오기 1년 전인 2006년 가을만 하더라도 200명이 넘는 애플 최고 엔지니어들이 만든 아이폰 프로토타입은 '재앙 덩어리'라고 말할 정도로 버그 투성이인 형편없는 물건이었다. 전화는 끊어지기 일쑤였고 배터리는 완전히 충전되지 않았는데도 충전을 멈추었으며 데이터와 애플리케이션도 계속 지워지거나 작동을 멈추는 등 문제가 생겼다. 고쳐야 할 버그 리스트는 정말 산더미 같았다. 데모를 지켜보던 스티브 잡스는 오히려 평온한 태도를 유지했는데, 통의 경우라면 불호령을 내릴 것이 뻔했던 그와는 상반된 모습이었다. 애플의 엔지니어들은 평소와는 다른 스티브 잡스의 모습을 더욱 무서워했다. 2007년 1월 맥월드에서 아이폰을 무조건 발표하기로 이미 계획이 잡혀 있었다. 이 프로젝트가 실패한다면 애플의 앞날은 장담하기 어려운 나락으로 떨어질지 도 모르는 상황이었다. 또한, 이 프로젝트는 단순히 애플이라는 한 회사만의 문제는 아니었다. 지금까지 휴대폰 사업이 통신사업자가 주도하는 것이었다면, 아이폰 프로젝트는 제조사와 개발자 그리고 소비자가 주도하는 방향으로 가는 것이었다. 싱귤러 와이어리스는 어쩌면 통신사업자들의 입지를 후퇴시킨 결정을 했다며 두고두고 후회할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소비자 중심의 세계로 진화하고 있는 상황에서 언젠가, 어떤 사업자는 한 번쯤은 내렸을 결정이었다.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엄청난 성공으로 연결시키면서 패러다임 시프트를 만들어낸 것은 애플의 공로라고 하겠다. 이런 위기의 상황에서 모든 애플 엔지니어들은 사력을 다해 버그를 잡고 안정화시키기 위한 노력을 기울였고, 수많은 엔지니어들이 좌절을 겪기도 했다. 이들 은 결국 2006년 12월 중순, 싱귤러를 합병한 AT&T;의 CEO 랜달 스테폰슨에게 스티브 잡스가 시연을 보일 때에는, 그의 손에 어떤 휴대폰보다 뛰어난 물건을 쥐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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