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서 육아를 한다는 것 (feat.외국에서 육아하기)
2019년 5월 1일이 예정일로 나는 3월 중순부터 출산 휴가를 쓰게 됐다.
일본은 노동기준법에 따라 산전휴가, 산후휴가, 육아휴가의 기간이 정해져 있다.
산전휴가 : 기본적으로 자연분만일 경우에 예정일의 42일 전 ~ 출산일까지가 출산 휴가로 인정받는다. 쌍둥이일 경우에는 98일 전부터, 공무원들은 2주 더 빨리 출산 휴가를 쓸 수 있다고 한다.
산전 휴가는 회사에 따라 더 빨리 사용할 수도 있지만, 내가 다니는 회사는 아주아주 보통의 회사로, 일본의 노동법 그대로만 적용하고 있다.
산후 휴가 : 출산일 다음날부터 56일간
육아휴가 : 기본적으로는 태어난 아기의 만 1살 생일 전날까지
사람들마다 사정은 다르기에, 육아휴가를 1년을 다 쓰지 못하고 출근을 결정하는 사람들은 물론 많이 있다. 집안 문제, 회사 눈치, 기타 등등의 이유로.
태어난 직후 찍은 발도장
다행히 내가 다니는 직장에서는 모두들 노산(35살 넘어서 낳았으니, 노산 맞다)의 나를 격려해주었고,
지금까지 모두 기본적으로 1년~2년은 육아휴가를 쓰고 있는 분위기였기에
아기와 좋은 추억을 많이 만들라면서 출산 선물까지 주고, 좋은 분위기에서 출산휴가부터 육아휴가를 쓸 수 있었다.
나는 예정일보다는 늦었지만 그 해 5월에 출산을 하면서, 남편과 여러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육아휴직은 언제까지 쓸 것이고, 아기에게 모유를 먹이는게 좋을지, 분유를 선택하는 건 어떨지에 대한 여러가지. 결과적으로는,
1. 1년은 모유수유를 하고 싶다는 나의 강력한 의지 (사실 남편도 같은 생각)
2. 너무 어릴 때 보육원(어린이집)에 보내는 것보다는, 그래도 1년 이상 아이와 살을 부딪히며 애착 관계를 맺고 싶다는 나의 강력한 의지! (사실 남편도 같은 생각)
로 결정이 났다.
육아 휴직은 1년을 신청하고, 나중에 보육원 신청에서 떨어지면 연장을 하기로 결정했다.
1년... 그렇게 힘들지 않을 거라 생각했지. 그. 때. 는.
임신과 육아를 자국이 아닌 타국에서 경험하면서 힘들었던 순간들을 기록해본다.
첫 번째, 매달 들어오던 월급이 없다는 것.
사실 이건, 한국에 있었어도 마찬가지였겠지만, 임신을 하면서 생긱 나의 큰 고민중에 하나였다. 고민이랄까, 아쉬움이랄까.
고등학교 때 이후로 줄곧 일을 해 왔고, 매달 월급이 따박따박 들어오던 나에게
출산 휴가 때부터 정신적으로 고통은 시작됐다.
물론 출산 수당과 육아 수당은 들어왔다. 하지만, 월급처럼 날짜가 고정적이지 않았고, 아기가 태어나는 날짜에 맞춰서 아기의 출생신고를 한 다음부터 신청할 수 있기 때문에 실제로 금전적으로 쪼달리지는 않았어도 기분이 좋지 못했다.
육아수당을 받게 되면서 월급보다는 현저희 적은 금액이었기에, 내가 자유롭게 쓸 수 있는 돈이라는 개념은 잊고 살아야 하는 게 괜히 손해 보는 기분 같고, 몸만 회복되면 다시 일하면서 멋진 커리어우먼 흉내를 내고 싶다는 생각으로 간절한 시기도 있었다.
두 번째, 남편을 제외하고 육아를 도와줄 수 있는 사람이 없다는 것.
여러 고민 끝에, 우리는 한국에서 출산하기로 결심했다.
정말 부푼 마음으로 찍었던 만삭 사진, 출산 후 보니 얼굴이 달떵이라서 지금은 잘 안보게 된다.
둘 다 한국인이라는 이유도 있고, 남편은 둘째로 이미 조카가 있어서 시댁에는 첫 손자가 아니지만, 우리 엄마에게는 첫 손자였기에 그 기쁨을 직접 느끼게 해주고 싶었다.
우리 아기 태명은 "귀욤이"
또한 한국의 조리원 문화를 꼭 경험해 보고 싶다는 생각도 있었고, 첫 애인데 남편과 둘이서만 갓난쟁이를 케어할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남편도 나름대로 이유가 있기도 했는데, 일본은 탯줄을 아빠가 잘라주는 문화가 없다. 아무래도 의료 행위이기 때문에 맡기지 않는 것 같다. 남편은 꼭 탯줄을 본인이 잘라주고 싶다는 의지가 있었다.
한국에서 조리원 2주, 시댁에서 몸조리 2주를 하면서 이모님도 부르고, 친정엄마가 일본에까지 와서 2주간 같이 있어주었기에 이때까지는 크게 힘들지 않았다.
한국 병원에서 출산 후 받은 꽃바구니, 면역력이 약해진 산모들에게는 알레르기 반응이 올라올 수 있기 때문에 방에 못 두고, 사진만 찍고 바로 집에 보내버렸다.
엄마가 돌아가고 난 후, 그때부터가 진짜 고생문이 시작됐다.
남편이 출근하고 나면 오롯이 나 혼자 아이를 돌봐야 한다는 부담감이 역시, 꽤 정신적인 스트레스를 주었다.
하루 종일 남편의 퇴근시간만을 바라노는 하루하루.
그리고 갓난아기는 생각보다 잠을 잘 자지 않는다는 걸 이때서야 알게 되었다. 임신 당시에 읽었던 모든 육아 서적에서 아기들은 대부분의 시간을 잠으로 보낸다고 쓰여 있었는데, 순 거짓말이었다!
태어난지 2달쯤 됐을까, 손이 통통하게 올라왔다. 통통손, 약 1년간 예민하신 아기님이라서 거의 안고, 업어서 재웠다
우리 아가는 조리원을 퇴실하고 난 후부터 젖병을 물지 않았기에, 힘들게 유축한 모유는 모두 버려야 했고, 모유만 먹는 아기 때문에 3시간 이상 아기와 떨어질 수도 없었다. 혼자만의 시간은 정말 간절했지만 주말에 혼자 잠깐 산책을 나가면 1시간도 안돼서 남편의 SOS 전화벨이 울리기 바빴다.
다행히도 남편이 아기를 정말 예뻐하고, 같이 시간을 보내는 걸 즐기는 사람이었기에 감사하게도
잠잘 때는 일부러 내가 따로 잘 수 있게 배려해준다거나,
아직 몸이 회복되지 않은 나를 위해 주말에는 산후 마사지를 받으러 갈 수 있도록 자기 시간을 할애해주었다.
이건 두 살 반이 된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세 번째, 한국어에 대한 걱정.
출산 전부터 많이 고민해 왔던 건데, 외국에서 자란 아이들이 모두 2개 국어를 자연스럽게 구사한다는 건 정말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부모의 노력이 엄청 필요한 일이다.
아이가 일본에서 자랄 경우, 집에서는 한국어를 하더라도 보육원(어린이집)을 다니는 순간부터는 일본어가 중심적으로 변하게 된다. 주변에는 엄마, 아빠는 한국어를 쓰지만 아이는 점점 사회에서 쓰는 공용어(일본어)를 사용하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한국어를 점점 안 쓰려는 현상이 많이 발생한다고 하고, 실제로 내 주변에도 아이가 한국어를 자꾸 사용하지 않으려고 해서 고민하는 엄마, 아빠가 많다.
남편과 나는 꼭 집에서는 한국어로만 대화하고, 모국어로 한국어가 자리 잡을 수 있도록 텔레비전을 아예 켜지 않기로 했다. 파이어 스틱을 이용해서 넷플릭스나 유튜브를 연결하여 한국 방송을 먼저 보게 해 주었고, 다행히 제1언어로 한국어가 자리 잡게 된 지금은 일본어로 된 방송을 보여줄 때도 있다.
언어에 대한 고민이 깊어지게 된 건, 올해 4월부터 내가 일에 복귀를 하면서 아이가 보육원(어린이집)에 등원하게 될 때부터였다.
4월 한 달은 잘 못 알아들으니, 매번 등원할 때마다 눈물바다였고(사실은, 지금도 주 5일 중 3일은 운다.),
보육원에서 찍은 사진을 보면 다들 선생님을 바라보고 있는데 우리 아가만 못 알아들어서인지 다른 곳을 보고 있는 사진을 보기도 했다.
지금도 볼 때마다 맴찢
다행히도 5월, 6월, 7월... 시간이 지나면서 현재 9월. 약 6개월이 지난 지금은
집에서는 한국어, 보육원에서는 일본어를 주 언어로 사용하고 있다.
하지만 역시 구분이 잘 안될 때도 있는지 아직까지는 집에서 주로 하는 말이 한국어 이더라도 선생님이 쓰는 말과 엄마, 아빠가 주로 사용하는 말이 다르기 때문에 일본어가 먼저 나오는 경우도 많다. 한국어 단어와 일본어 단어를 섞은 문장으로 말할 때도 있다.
동그라미 그렸다!
네 번째, 일본어로 육아하는 어려움.
사실 일본어는 시간이 지날수록 오히려 남편이나 나보다 점점 더 잘하게 될 걸 알고 있다. 분명 내년쯤에는 이미 나를 넘어설 것 같다.
아쉬운 점은 보육원에서 여러 동요를 배워오고, 그걸 부르기도 하는데
나와 남편이 일본 동요를 잘 모른다는 게 문제였다.
한국 동요라면 우리가 같이 따라 불러주고 고쳐주고는 하는데,
일본 동요는 아는 게 한두 곡뿐이라서, 아이가 부르는 가사를 검색해서 알아보거나, 아직 아기의 서툰 언어 때문에 제대로 알아 듣지 못한 채, 제대로 된 리액션을 해주지 못하고 지나가 버릴 때가 많다.
아쉬운 마음에 "노래도 잘 부르네~" 하고 칭찬을 해주지만, 같이 따라 부르지 못할 때 너무나 아쉬운 마음이 든다.
유일하게 같이 잘 부르는 건 [반짝반짝 작은 별]로
일본어로는 [キラキラ星]
영어로는 [ABC Song]으로 해서 같은 멜로디에 3개의 언어로 노래를 부른다.
날씨 좋은 날 우에노공원에서 돌을 줍고 있다.
언젠가부터 이 노래만, 계속 부른다.
아이가 자기가 부르는 노래에 엄마, 아빠가 모르고 있다는 걸 눈치챈 건 아닐까? 하고 걱정되는 순간이 있다.
아이가 커갈수록 걱정은 더 늘어날 것 같다.
초등학교는 한국학교를 보내야 할지, 인터내셔널 스쿨(국제학교)을 보내는 게 좋은 건지, 정말 여력이 안된다면 일본 소학교(초등학교)를 보낼 수도 있을 것이다. 현재로서는 동경한국학교에 보내고 싶어서 그 근처 집을 알아보고 있다.
일하면서 일본 엄마들과 교류하는 시간도 별로 없기 때문에 아직까지는 어려움이 많다.
항상 한국사람들이 모여서 여러 이야기를 나누는 [일본맘]이라는 카페에서 많은 정보를 얻고, 위로를 받고 있다.
외국에 사는 이상, 아이가 무사히 바이링구얼로 자랄 수 있도록 내가 더 노력할 수 있도록 해야겠다. 좋은 길로 안내할 수 있도록.
오늘의 기록, 끝.
from http://cometoe52.tistory.com/4 by ccl(A) rewrite - 2021-09-29 11:59:30
댓글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