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대동세상에 청년은 없다 / 홍찰찰
홍찰찰(기독청년활동가)
세상이 참 많이 바뀌었나봅니다. 청년이 정당 대표라니요. 듣자하니 '이대남' 그러니까 '이십대 남자 청년'들의 압도적인 지지로 당선되었다지요? 생각해보면 이상하기도 합니다. 지금 20대 청년들은 몇 년 전만 해도 촛불을 들고 광장에 나오기도 했을텐데요. 보수정권의 부패한 모습과 그 몰락을 두 눈으로 보았던 청년들이었을겁니다. 왜 이들이 돌아섰을까요? 이런 소식들을 들으면서 무엇을 느끼셨나요? "요새 일베인가 뭔가가 많다더니 그건가보다"라고 생각하셨나요? 애석하게도 일베가 전도를 열심히 했기 때문이거나, 청년들이 전광훈 목사에게 감명을 받아서가 아닙니다.
저는 소위 '진보'라 자처하는 사람들에 대해서 청년들이 느낀 괴리감에서 출발해보려 합니다. 앞서 촛불 이야기를 했으니 조금 더 이야기해볼까요. 촛불의 시작점이 어디였는지 기억하시나요? 저는 이화여대에서 일어난 운동이라고 기억하고 있습니다. 권력자의 가족이라는 이유로 엄청난 특혜를 받아온 사건에 대한 폭로였지요. 이렇게 당겨진 방아쇠는 걷잡을 수 없이 커져 '이게 나라냐'라는 구호가 되었습니다. 이 구호는 단순히 '보수정권을 끝장내자'라는 정치적 구호가 아니었습니다.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보자'라는 염원이었지요. 공정하고 깨끗한 세상을 만들자는 외침이었습니다. 그리고 '진보'라고 자처하는 정권이 기회를 얻었지요.
이후 청년들이 본 것은 무엇이었을까요? 부동산 정책을 이야기하니 정부관료 거의 대부분이 떳떳하지 못했습니다. 장관의 가족이 특혜를 받았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유력한 대권후보들의 성추행과 성폭력 그리고 그들을 비호하는 수많은 지지자들을 보았습니다. 촛불에 담겼던 수많은 목소리들, 특히 청년들의 외침이 바라던 세상은 적어도 이런 익숙한 모습은 아니었습니다.
1987년 이후에 태어난 청년들에게 민주주의는 일상의 문제입니다. 이제 우리가 쟁취할 민주주의는 일상 속에 자욱하게 깔려있는 권위주의와 불평등에 대한 저항이고, 가부장제와 성차별, 성폭력에 대한 싸움입니다. 여전히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세상'을 위한 몸부림입니다.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세상은 거대한 구호나 조직이 아니라 내가 숨 쉬는 일상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특별히 성인지감수성에 대해 말하려합니다. '사건과신학'을 관심있게 읽으시는 여러분은 아마 그리스도인이겠지요. 저는 교회가 모두에게 안전한 공간이길 바랍니다. 여러분도 동의하신다고 믿어요. 청년들이 옷차림이나 화장을 지적당하지 않으며 하나님께 예배하는 공간, 연애/결혼/출산에 대해 압박받지 않으며 교제하는 공간, 여성 교역자들이 전도사나 목사가 아니라 '여자 전도사, 여자 목사'처럼 따로 불리지 않는 공간, 그리고 각자의 커피는 각자가 타서 마시는 공간. 성인지감수성은 이렇게 사소한 부분에서 출발합니다. 이런 일상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을 때, 이런 문화가 사라지지 않을 때 성희롱과 성폭력이라는 폭탄은 반드시 터집니다.
다가오는 하나님 나라, 대동세상의 모습은 30년 전 고대하던 모습과는 많이 다를겁니다. 오늘 우리가 꿈꾸는 하나님 나라는 어린아이같이 힘없고 초라한 사람들, 성폭력 피해자들을, 특히 권력형 성폭력 피해자들과 함께 걸을 때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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