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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와인을 마시는 여자 1화

붉은 와인을 마시는 여자 1화

선선하게 부는 바람. 수많은 집들의 창문으로 단 한줄기 빛도 내리지 않는 어두운 밤. 환한 빛이 내리는 낮이 되면 시끌벅적할 이 거리에 고양이 울음소리와 바람이 스치고 지나가는 소리, 부엉이의 두 눈동자 말고는 아무도 없다.

이 시간은 오로지 나만의 시간이다. 또각거리는 구두 소리가 차가운 밤공기 사이로 흩어졌다. 파티에 참석이라도 하는 양 곱게 차려입은 여인이 아무도 없는 밤거리를 걷고 있었다.

벨루아는 얼굴 위로 덮고 있던 망토를 내렸다. 시원한 바람이 피부를 스친다.

"하~ 좋다"

어슴푸레 떠 있는 달빛과 길가의 가로등이 그녀를 비췄다. 아무도 없는 거리를 돌아다니는 모습이 마치 어린아이같이 밝다. 걸어가는 발걸음이 누가 보아도 땅 위에 둥둥 떠 있는 듯했다.

그녀는 치마가 원처럼 퍼지도록 빙그르르 돌아보기도 했고, 하늘을 쳐다보며 깊은 숨을 들이마시기도 했다. 이 어두운 밤에 누군가가 그녀를 본다면 필히 미친 사람인 줄 알리라.

벨루아는 잠시 분수대에 앉아 해가 뜨고 날이 밝은 뒤의 모습을 상상해보았다. 자신밖에 없는 이 거리는 몇 시간 뒤면 사람들로 북적거릴 것이다.

지금은 멈춰있는 이 분수대에서 물이 뿜어지고 그 위를 따스한 햇살이 비출 것이다. 다그닥거리는 마차들의 말굽 소리가 들리기 시작하면 옆 카페와 레스토랑에서는 좋은 자리를 선점하여 의자와 테이블을 이 분수대 앞으로 가져다 놓을 것이다.

예쁘게 꾸며놓은 테이블에 앉아 친구들끼리 떠드는 즐거운 소리, 연인들끼리 속삭이는 애정 가득한 소리들이 그녀의 귀로 들려오는 듯 했다.

그 모든 사랑스러운 장면들이 자신에게는 결코 허락되지 않는 시간과 공간이라는 사실을 떠올리며 그녀는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탁,탁,탁'

그때 어디선가 발소리가 들려왔다. 사방이 조용했기에 평소라면 들리지 않을 작은 발소리가 선명하게 들렸다.

"뭐지?"

벨루아는 소리에 놀라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녀는 얼어버린 얼굴로 소리의 정체를 찾았다. 그러나 분수대를 중심으로 나있는 여러 개의 갈래 길을 아무리 둘러보아도 보이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잘못 들었나?..."

사람은 커녕 고양이도 보이지 않는 어두운 밤 가운데 있는 그녀는 조금 무서워졌다.

'탁,탁,탁,탁'

그때 또 다시 소리가 들려왔다. 분명 누군가의 발소리였다.

"아니야, 누가 있어."

그녀는 잔뜩 긴장한 채 다시 갈래 길을 하나씩 살펴보았다. 분명 아무도 없었던 한 갈래 길 끝에서 사람의 그림자가 보였다. 그림자는 그녀가 있는 분수대를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

"하, 어떡해... 숨을 곳. 숨을 곳."

다급하게 몸을 숨길 곳을 찾던 그녀의 눈동자가 포도주 상자더미를 발견했다. 그녀는 곧장 어느 문 닫힌 상가 옆 빈 포도주 상자들 뒤로 몸을 숨겼다.

걸어오던 발걸음 소리가 멈췄다. 그녀의 숨도 멈췄다. 그녀의 심장은 매우 빠르게 뛰고 있었다. 그녀는 아주 조심히 상자 뒤로 얼굴을 살짝 내밀어 상황을 살폈다. 분명 길 끝에 있던 남자가 어느새 분수대 앞에 있었다. 남자는 두리번거리며 무언가를 찾고 있었다.

'뭐야 벌써? 뭐 이렇게 빨라.. 뭘 찾는거야?... 설마 나는 아니겠지?'

남자가 벨루아가 있는 방향으로 걸어왔다. 그녀는 급히 상자 뒤로 얼굴을 숨겼다. 혹여나 드레스 자락이 보일까, 옷자락을 발목쪽으로 움켜잡았다.

그녀의 심장은 미친 듯이 뛰고 있었다. 다행히 남자는 포도주 상자 바로 직전에 멈춰섰다. 그러나 그가 고개를 살짝만 돌려도 들킬만한 거리라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녀가 고개를 올려보았을 때 남자의 머리가 얼핏 보였기 때문이다.

달빛이 남자의 얼굴을 살짝 스쳐 지나가자 남자의 표정이 보였다. 뭐가 그리 즐거운 지 그는 웃고 있었다. 벨루아는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며칠 전 읽었던 스릴러 소설의 한 장면이 그녀의 머릿속에 그려졌다. 소설 속에서 주인공은 살인범을 피해 달아나고 있었다. 몸을 숨긴 채 기다리다 아무 소리가 나지 않아 돌아본 순간 기다리던 살인범이 주인공을 덮친다.

벨루아는 고개를 저으며 애써 생각을 밀쳤다. 그건 소설일 뿐이야. 벨루아는 그가 제발 그대로 뒤돌아가길 눈을 질끈 감은 채 빌었다.

'그냥 가라. 그냥 가라. 그냥 가라.'

그녀의 간절한 바람 덕분인지 남자는 다행히 걸음을 돌렸다. 벨루아는 그가 충분히 멀리 사라지길 기다렸다. 소설에서도 이 때 방심하다 꼭 걸리곤 한다.

그러나 아무리 기다려도 발걸음 소리가 더는 나지 않았다.

'왜 안 가는거야'

벨루아는 다리가 점점 저려왔다. 행여 소리가 들릴까 조심히 쉬는 숨 때문에 점점 숨도 차올랐다. 그녀는 아주 조심히 다시 포도주 상자 옆으로 고개를 살짝 내밀었다.

분명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는데 남자는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하,"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하자마자 벨루아는 다리에 힘이 쭉 빠져 그대로 주저앉았다.

"뭐야, 언제 갔어... 하..."

벨루아는 가쁜 숨을 몰아쉬며 식은땀을 닦았다. 팔에는 소름이 쫙 돋아있었다. 정신을 차리고 그녀가 일어나려 했을 때 미처 풀리지 못한 다리가 힘을 잃고 앞으로 고꾸라져 넘어졌다.

"아야.."

드레스에 흙이 잔뜩 묻었다.

톡,

그 때, 그녀의 뺨 위로 물 한 방울이 떨어졌다.

톡, 톡, 톡,

그녀의 옷과 바닥에도 물이 떨어졌다.

"비야?! 이 타이밍에 비까지?"

한숨이 절로 나온다. 그녀는 팔에 돋은 닭살을 진정시킬 새도 없이 집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비에 쫄딱 젖지 않으려면 일단은 달려야 했다.

투둑, 투둑, 투둑

투둑, 투둑, 투두둑,

투두두득, 쏴아아

한 방울씩 떨어지던 비는 곧 폭우가 되어 쏟아졌다. 벨루아는 비를 맞으며 전속력으로 달려 다행히 폭우처럼 쏟아지기 전에 집에 들어갈 수 있었다. 그러나 이미 뛰어오며 맞은 비로 머리는 엉망이었고, 그녀의 긴 드레스는 축축히 젖어있었다.

달리면서 튀긴 흙탕물들이 드레스에 고스란히 묻어있는데다 그녀의 신발에 묻어온 진흙들이 그녀가 한 발자국을 내딛을 때마다 대리석 바닥에 흔적을 남겼다.

"아.가.씨"

벨루아가 그녀의 흔적을 보며 고민하고 있을 때 어린 하녀가 나타났다. 벨루아보다 한참은 어려보이는 그녀는 팔짱을 끼고 벨루아를 못마땅하게 쳐다보고 있었다.

"메이.. 하하... 미안, 부탁할게."

"아니.... 제발 좀 낮에 다니시라니까요. 왜 맨날 밤에 나가시냐구요, 대체. 휴이님한테 들키면 저 죽어요."

메이는 짜증을 내며 우는 소리로 벨루아를 다그쳤다. 행여나 누가 깰까 소리를 크게 내지는 못했지만 감정 전달은 제대로 되었다.

"낮에는 사람이 많아서 싫은걸..."

"그걸 말이라고 하세요? 정말 큰일 나시면 어쩌려구요. 그것보다 하... 지금 아가씨 꼴을, 아니 모습을 보시고 말씀하세요. 잠깐! 옷 찢어진 거에요?!"

"뭐? 어디?"

"거기 밑에요! 레이스 있는 부분."

"어머나...... 언제 뜯겼대..."

메이의 쏘아보는 눈빛이 따갑다.

"그니까, 내 모습이 말이 아니지. 그래서 나 얼른 들어가서 쉬고 싶어."

벨루아가 애교 섞인 목소리로 말하자 메이도 더는 뭐라하지 못하고 그녀에게 깨끗한 신발을 건넸다.

"이걸로 갈아신으세요. 감기 걸리시니까 꼭 씻고 주무시고요."

"응응, 고마워"

"드레스! 올려 잡으시구요."

메이는 해맑은 목소리로 대답하며 이층 계단을 올라가는 벨루아를 매서운 눈으로 다그쳤다. 벨루아는 한껏 드레스를 올려 잡았지만 흔적을 남기지 않는 건 어려웠다. 메이는 그녀가 남기는 흔적들을 마대자루를 들고 쫓아가며 닦아주었다.

"그 남자... 뭐였을까? 큰일날 뻔 했어."

씻고 침대에 누운 벨루아는 자꾸만 어둠 속의 그 남자가 떠올랐다. 포근한 이불 속에서도 자꾸만 소름이 돋았다. 쿵쾅거리는 심장이 아직도 진정되지 않는다. 스릴러 소설의 주인공이 된듯한 이상하고 섬뜩한 기분이 쉽게 떨쳐지지 않아 그녀는 한참동안 뒤척여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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