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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살 시한부 일기 5

서른살 시한부 일기 5

05

먼저 떠나간 사람들

일주일 동안 일기를 쓰지 않았다.

좋은 일이 하나라도 있었다면 일기를 썼을 텐데

그사이에 나쁜 일밖에 일어나지 않아 일기를 쓰기가 싫었다.

이번 주에는 엄마 아빠를 만났다.

웬일인지 나에게 잘해주었다. 특히 아빠가

내 일기를 몰래 본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묘하게 태도가 바뀌어있었다.

나와 헤어질 때는 현금인출기를 급하게 찾더니 돈을 뽑아 15만 원을 주셨다.

나는 이 돈을 고스란히 모아두었다가 몇 주 뒤 있을 설날 때 할머니 용돈으로 드려야겠다고 생각했다.

고작 서른이 되었지만 난 내 또래보다는 이별을 많이 겪은 편이라고 생각한다.

내 남자 친구는 한 번도 죽음의 이별을 겪은 적이 없다고 하였다. 친가 조부모도 외가 조부모도 다 살아있다고.

그때 참 부럽다고 느꼈다. 아직 한 번도 죽음을 겪어 본 적이 없다니.

일곱 살 때 엄마를 키워주셨던 증조할머니께서 돌아가셨을 때에 나는 이미 죽음에 대해서 잘 알고 있었다.

다시는 그 사람을 보지 못한다는 걸 인식하고 있었다. 하지만 장례식장에서 울지 않았다.

그 자리에서 내가 슬픔에 못 이겨 울어버리면 일곱 살인 내가 죽음에 대해서 알고 있다는 걸 어른들이 이상하게 생각할까 봐.

나는 죽음에 대해서 아직 모른 걸로 보이길 원해서 눈물을 흘리지 않고 버티고 있었다.

그때 난 왜 그랬을까.

친척 어른도 하나둘 초등학생 때 돌아가셨다. 그때까지만 해도 울지를 않았다. 어른들은 슬피 울었지만.

아직도 그때를 떠올리기만 해도 눈알이 시큰하다.

열일곱, 내가 사는 곳에서 먼 고등학교에 들어가서 신입생 때 동아리를 들어갔다.

거긴 사진 동아리였다. 면접을 보고 들어가는 5대 동아리라 다들 자부심이 대단하였다.

그곳에서 알게 된 한 살 오빠가 있었다. 나랑 가까운 곳에 살아서 그 선배는 날 잘 챙겨주었다.

그 선배는 그렇게 살가운 성격은 아니었다. 그 당시에는 스마트폰이 나오기 전이라

네이트온이란 메신저를 사용했을 때인데 신기하게도 메신저에서는 아주 살갑게 대해주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선배도 겨우 열여덜이어서 이성에게 낯을 많이 가리는 사람이었던 거 같다.

서로 동아리 행사도 함께하고 엠티도 바닷가로 일박이일로 다 같이 다녀오고

조금씩 친해지게 되었다. 난 피부가 까만데 그 선배는 피부가 되게 하얬었다.

그리고 눈은 길쭉하게 찢어졌고 턱은 사각턱에 아주 남자답게 생겼었다.

아마 대학교에서 알게 됐으면 그 선배와 친해지지 못했을 거다. 분명히 인기가 많았을 테니깐.

나는 그 시절부터 기질적으로 우울했었고 그 당시 그런 날 눈치채 준 유일한 사람이 그 선배였다.

우리 둘은 약속한 것처럼 밤에는 항상 네이트온에서 한두 시간씩 대화를 하다가 잠들었었다.

그날 밤에는 유독 내 속 얘기를 많이 한 날이었다.

한없이 착하기만 했던 그는 나에게 위로와 용기를 한가득 안겨주었고

난 그 용기와 위로를 약으로 삼아 마음 편하게 잠을 잤다.

그다음 날 아침에 등교를 하다가 그 선배는 교통사고를 당했다.

소식을 듣고 난 눈앞이 아찔했다. 선배의 장례식장에 가지 않았다.

그곳에 가면 선배가 죽었다는 걸 인정하는 것 같아서 가고 싶지 않았다.

장례식장에서 선배의 영정사진을 마주 볼 자신이 없었다.

그곳에만 가지 않으면 선배가 살아있다고 느낄 수 있으니깐.

지금에 와서는 후회한다. 그곳에 가서 선배의 부모님을 위로해드렸어야 했는데.

바보 같은 생각에 마지막 가는 길을 지킬 기회를 잃어버린 게 아닌지.

처음에는 그 교통사고를 낸 아저씨가 미웠다.

몇 년간은 그 사람이 똑같은 크기의 고통을 받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내가 대학생이 된 다음에는 몇 년만 더 있다가 가지 란 생각이 들었다.

선배가 일 년 이년만 보냈더라면 대학생활을 할 수 있었을 텐데.

분명히 선배는 공부를 잘하니깐 좋은 학교에 갔었을 거야.

잘생긴 명문대생이 되어서는 미팅도 많이 하고 다녔을 거야.

힘들기만 한 입시 시절만 보내고 간 게 아닌가 안타까웠다.

어렸던 그때 낯을 많이 가리던 우리가 조그만 용기를 내었더라면

우리는 메신저로만 밤에 열렬한 대화를 나누지 않았을 수도 있었다.

돈은 없던 학생이지만 함께 돈을 모아 맛있는 음식들을 먹으러 다니고 같은 취향의 영화를 보러 다녔겠지.

출사를 하러 근처 유명한 폐놀이공원에 가서 분명 멋들어진 사진을 찍었을 거다.

학교 근처 호수에 가서도 내가 싼 김밥을 먹으며 햇빛을 받으며 평화로운 오후를 보내고

새 사진을 찍어댔을 수도 있다. 그러면서 서로 내 사진과 선배 사진을 찍어주었을 꺼고 함께 얼굴을 맞대고 사진을 찍었을 수도 있었다.

그렇게 우리는 더 친해졌을 수도 있었다.

일 년이란 시간밖에 난 선배와 알지 못했지만 그 짧았던 우리의 기억은 십여 년이 지난 아직까지도 나를 괴롭힌다.

내가 지금에 와서야 할 수 있는 건 후회 빼고는 아무것도 없는데 말이다.

참 보고 싶다.

내가 서른이 되었고 시한부 인생이라 앞으로 일 년도 채 못살고 죽게 되는데 도저히 선배를 생각하면 죽음 앞에서 투정을 부릴 수가 없다.

그 찬란한 꽃봉오리가 꽃을 만개하려는 그때에 선배는 가버렸는데 내가 그 앞에 대고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선배 내가 죽으면 그때 한번 봐요. 선배는 솜털이 채 없어지지 않은 말끔한 얼굴이겠어요.

나는 피부관리를 잘하지 못해 보기 썩 좋지는 않답니다.

그래도 나를 알아봐 주시고 한번 찾아와 주세요.

제가 요즘 차에 푹 빠져 차를 내릴 줄 아오니 만나면 우리 차 한잔 해요.

제가 선배가 좋아할 것 같은 향의 차를 골라서 기다리고 있을게요.

선배 생각을 십여 년 동안 잊은 적은 없습니다. 그러니 내가 가게 되면 그땐 한번 만나봐요.

우리가 이제는 나이를 먹어 낯을 가리는 일은 없겠죠?

선배 그때에도 우리가 낯을 가리면 안 돼요.

오랜 기다림이었으니 만나면 환하게 맞이해주세요.

그동안 저도 고생을 많이 했으니 다정하게 먼저 다가와주세요.

스물두 살이 되어 서울에서 대학생활을 할 때 알게 된 동생이 있다.

스무 살짜리 나와 두 살 차이인 아이였다.

친하게 지내던 동생이 함께 놀자고 몇 번 데리고 온 동생인데

그 스무 살짜리 동생이 나와 친해지고 싶어 하던 게 눈에 보였다.

싹싹했고 성격도 좋아 나도 친해지고 싶었고 그렇게 우리 둘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급속도로 친해지게 되었다.

어느 정도였냐면 나와 그 동생이 따로 만나 노는 걸 알고는 소개해준 동생이 우리 사이를 질투하여 잠시 동안 연락을 안 할 정도였다.

이 동생은 스무 살인데 집을 나와 나이 많은 남자 친구와 동거를 하고 있었다.

그때는 나도 어릴 때라 동거를 한다는 게 참 신기해 보였고 아주 진보적으로 보였다.

그 동생은 아이돌이 되고 싶어 했고 같이 살던 남자 친구가 댄스학원비용을 지원을 해주었다.

내 주위에서 연예인을 준비한다는 사람은 난생처음 봤었고 아예 모르고 살던 다른 분야의 사람이기에 나는 그 동생에게 인간적인 호기심과 호감으로 똘똘 뭉쳐 그 동생 자체가 사랑스럽게 여겨졌다.

나이가 좀 더 드니 동생은 클럽 엠디 일을 시작했다.

이십 대 중반이 되어서는 아이돌이 되기 힘들다는 걸 알았는지 그렇게 자기의 댄스 재능을 살려 취업을 한 것이다.

나는 그게 또 대단해 보였다. 동생이 일하는 클럽에 날 초대해 공짜로 비싼 술도 사주고 그랬다.

할로윈같이 클럽에 큰 행사가 있으면 집에만 있는 날 초대해서 챙겨주었다.

여태 평생에 살면서 있을 수 없었던 클럽에 가서 신나게 노는 경험을 나에게 선물해준 동생이었다.

그 이후에 너무 친하게 지내다 보니 누구나 그렇듯 사소한 오해로 싸우게 되었고 그 이후에 우리는 서로 연락을 끊게 되었다.

나는 영국에 일을 하러 갈 준비를 한창 할 때 동생이 암에 걸렸단 소식을 풍문으로 들었다.

미안하지만 나는 그 소식을 믿지 않았다.

그저 심각하게 아픈 거일뿐 암까지는 아닐 거라 생각했다.

그냥 과장하여 말하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소식을 부풀려 나에게 전해준 거라 단정했다.

한번 병원에 입원해 있다길래 그래도 연락을 해보았고 핸드폰 타자 치기 어렵다 하여 몇 번 영상통화를 했지만

그런 동생은 나에게 '여름에 아는 오빠들이랑 괌에 놀러 가자. 준비해'란 얘기를 하였다.

그래서 나는 '아, 얘 아직 살만하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핑계지만 영국 가기 전 준비가 너무 바빠 병문안을 가지 못했고 동생은 퇴원을 해서 본가에 들어갔다는 소식을 들었다.

영국 다녀올게 라고 소식을 전했고 동생은 그런 내가 부럽다 하였다.

난 무정하게도 내 생활이 바빠서 더 이상 연락을 하지 못했다.

동생은 내게 보고 싶다고 연락을 하였다. 그 이후에는 소식이 끊겼다.

영국에서 한국으로 돌아가기 전날에 한국에서의 공항버스를 예매하고 너무나 큰 이민가방을 어떻게 짊어 다닐지에 고민하고 있을 때 동생이 죽었다고 연락이 왔다.

늘 그렇듯 난 충격에 스트레스를 받아 과호흡을 하고 쓰러지고 난리가 벌어졌다.

내가 한국에 도착하는 날이 장례식의 마지막 날이라고 전해준 친구가 장례식엔 오지 말라했다.

마지막 날은 발인이라 바빠 오면 짐이라 했나 뭐래나.

그래도 갔어야 했는데 가지 못했다. 이게 정말 후회가 된다.

나는 왜 내 슬픔만 생각하여 장례식에 가지 않는지. 어린애도 아니고 현실을 부정하려 장례식을 가지 않는다는 게

지금 생각해보면 참 철없고 자기중심적인 행동이다.

그리고 그 행동은 무조건 후회하게 되는 일임을 이제는 안다.

동생이 죽고 난 뒤에는 내가 잘못한 것만 계속 떠올랐다.

그래도 내가 두 살 언닌데 왜 동생에게 너그럽지 못하게 대했는지 후회만 떠올랐다.

이래서 착하게 살랐는가 보다. 떠나보내고 나니 모든 게 후회뿐이다.

이제는 내가 동생처럼 그 상황에 놓여있다.

동생을 만나게 되면 내가 여태껏 너에게 항상 살갑게 대하지 못하고 뭐가 그렇게 크고 중요한 일이라고 너와 싸우고 먼저 다가가 풀지 못했는지 사과하고 싶다.

언닌데 비싸고 맛난 밥 한 끼 사주지 못한 것도 후회된다.

우리 만나게 되면 내가 맛있고 비싼 밥 사줄게. 계속 사줄게.

그리고 너한테 잘 대해줄게.

내가 여동생이 없어서 어떻게 베풀어야 하는지 변명이지만 그땐 이십 대 초반이라 잘 몰랐나 봐.

사랑스러운 너를 다시 볼 날을 기다리고 있을게.

그때는 내가 온 힘을 다해서 너에게 잘해줄 거야.

무조건적으로. 후회하는 게 제일 아프더라고. 이제는 그 지긋지긋한 후회하는 짓 안 할 거야.

만나면 난 무조건 너의 편에서 서고 너를 내 진짜 동생으로 여길 거야.

너도 나에게 분명 서운한 점이 많겠지. 만나면 다 풀자. 동생아.

from http://manualofhuman.tistory.com/27 by ccl(A) rewrite - 2021-01-30 12:2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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